가능성 더욱 높아진 '최악 시나리오'
로펌 자문 변호사까지 입건돼 '술렁'
위법행위 '공모' 입증 여부는 불투명
전방위 압박에, "쉽게 안 끝난다"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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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 주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던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검찰에 송치되며 구속 위기에 처했다. 카카오 경영진과 더불어 SM엔터 인수 과정을 자문한 대형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들까지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며 긴장감이 한층 더 높아지고 있다.
변호사들이 법률 자문 과정에서 위법 행위에 얼마나 관여했다고 인정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재확인된만큼 카카오가 무죄를 입증하고 수사의 굴레를 벗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 15일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을 불구속 상태에서 기소의견 송치했다. 특사경은 이날 홍은택 카카오 대표이사, 김성수·이진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대표, 그리고 법무법인 율촌의 기업자문 변호사 2인도 기소의견으로 서울남부지검에 넘겼다.
당초 금감원 특사경은 김 창업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단 불구속 상태로 송치했다. 금감원은 지난달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배재현(구속)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와 카카오 법인 등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고, 지난 13일 검찰이 배 대표와 카카오 법인을 재판에 넘긴 바 있다.
카카오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김범수 전 창업자의 구속 기소 및 실형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다만 금감원과 검찰의 수사 의지가 높더라도 재판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정확한 증거로 혐의가 입증되지 않으면 최종 무죄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것은 카카오와 율촌 변호사 간에 어떤 의견이 오고갔느냐다.
법조계에선 전문 법률 지식을 가지고 있는 대형로펌의 변호사들이 위험한 방안을 제시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카카오가 큰 고객이라지만 환심을 사기 위해 먼저 위법 사항을 제안하는 그림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M&A 과정에서 법률 자문을 한 변호사들까지 문제삼아 입건하는 것은 드문 일이기도 하다.
특사경은 지난 8월 SM엔터 주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율촌을 압수수색했다. 법무법인은 개인의 비밀이나 방어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압수수색이 잘 이뤄지지 않는 곳이다. 이후 주요 인사들에 대한 구속과 수사, 검찰 송치가 속도를 냈기 때문에 압수수색 과정에서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상당부분 확보됐을 것이란 시각이 있다. 특사경은 변호사들이 정상 법률 자문 범위를 넘어 위법 행위를 방조 혹은 공모했다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카카오 건은) 혐의가 얼마나 명확하게 입증이 되느냐의 문제인데, 변호인 측에서 위법 행위를 먼저 제안했다면 ‘공모’가 되거나 최소 ‘방조’가 될 수 있다”며 “만약 카카오 측의 질문에 변호사의 비밀 유지를 조건으로 단순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면 애매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법에 의하면 공개매수 기간에 장내매수를 하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특사경은 카카오가 하이브의 SM엔터 인수를 막기 위해 2400여억원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불공정 매매를 했다고 보고 있다. 사모펀드(PEF) 원아시아파트너스와 함께 SM엔터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도 이를 공시하지 않은 혐의도 있다. 원아시아파트너스는 카카오와 여러 차례 거래 관계가 있다.
다른 대형 로펌 관계자는 “실상이 어떻든 당국은 로펌과 카카오가 나눈 의견을 카카오 및 김범수 전 창업자가 위법 행위에 적극 가담한 증거로 인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례적인 대형 법무법인에 대한 압수수색, 드문 자문 변호사 검찰 송치까지 감안하면 금감원과 사법당국의 수사 의지는 상당히 강고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감원의 수사가 속도를 낼 때도 일부 임원은 '구속 위험'은 없다고 봐 변호사 수임에 소극적이었는데, 예상보다 강도 높은 수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카카오 관련 수사는 단순한 경제 범죄의 범주를 넘어선 듯한 분위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카카오모빌리티 제재에 나서자 윤석열 대통령이 “택시에 대한 카카오 횡포가 부도덕하다”고 공개 비판했다. 16일엔 다른 계열사인 카카오페이까지 가맹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리베이트가 오고 갔다는 혐의로 해당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는 등 그룹 전반에 대한 정치권과 사정당국의 눈초리가 매섭다. 수사가 가볍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금감원은 이번 사건의 피의자를 총 18인(법인 포함)으로 지목한 바 있다. 나머지 피의자들도 수사 후 추가 송치한다는 방침이다. 수사당국이 카카오, 카카오엔터, SM엔터, 법무법인, 원아시아파트너스 등 여러 곳을 압수수색해 정보를 확보한 만큼 수사와 재판이 계속될 수록 논리는 더 정교해질 전망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어떤 카드를 가지고 있는 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자문 변호사들까지 입건을 하는 등 수사가 다소 공세적인 방향으로 정해진 결론을 향해 가는 분위기가 있다 보니 카카오가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