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지분 시가만 6조원 넘어서며 유찰 우려도
실적 아쉬운 금융사들 헛심만 쓰고 끝날까 걱정
손꼽힐 대형 거래, 성사돼도 셀다운 부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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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매각 결과에 금융 주선사들의 이목이 모이고 있다. 매각 대상 지분의 시장 가격이 고공행진 중이라 유찰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사들은 올해의 부진을 한번에 씻을 기회로 보고 공을 들인 HMM 인수전이 성사되길 노심초사 바라고 있다. 다만 거래가 진행되더라도 막대한 규모, 부진한 업황, 인수자의 체력 등을 감안하면 재매각(Sell down)에 애를 먹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오는 23일 HMM 매각 본입찰을 앞두고 각 인수후보들은 자산 매각, 재무적투자자(FI) 초빙, 채권 발행, 자금 차입 등으로 분주하다. 하림그룹은 국민·신한·우리 등 시중은행, 미래·NH 등 증권사와 손잡았고 동원그룹은 하나은행을 필두로 한국투자증권 등의 도움을 받고 있다. 금융사들은 본입찰 전까지 내부 승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대형 증권사와 협력을 논의하던 LX그룹은 인수 의지가 많이 약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핵심은 매도자가 원하는 가격과 인수후보의 체력이다. HMM 매각은 공적자금 회수 거래니 예정가격이 중요하다. 매도자가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한 후에도 주가가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겠다 발표한 영향도 있다는 평가다. 매각 대상은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가진 HMM 지분 약 4억주(지분율 57.9%)고, 시가는 6조원을 웃돈다.
산업은행은 예상보다 높은 주가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감사원이 과거 산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 거래에서 특혜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점도 변수다. 예정가격을 산정하기 위해 여러 지표를 활용할 수 있지만 상장사는 시가와 동떨어진 금액을 정하기 쉽지 않다. 감사원은 M&A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 국민의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하림과 동원이 조달한 자금에 인수금융 최대치까지 감안하면 6조원 안팎의 금액을 써낼 여력이 있다. 금액을 써내는 것과 이후 부담을 감내하는 것은 별개다. 3조원을 7%대 금리로 빌리면 연 2000억원 이상의 이자를 내야 한다. FI나 영구채 등은 조달 금리가 더 비쌀 것으로 보인다.
매도자는 HMM 인수자에 '배당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2021~2022년 한창 호황일 때 HMM의 현금 배당 성향이 5%대였다. 작년처럼 10조원의 순이익이 난다면야 배당으로 HMM 관련 이자를 감당할 수 있지만 앞으로 몇 년간은 대규모 배당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초반부터 HMM 매각가는 5조원을 받기도 빠듯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산업은행발 M&A는 정치적 고려도 살펴야 하는 거래다. 정부가 드러내놓고 인수자를 결정하지는 않더라도, 반대는 하지 않아야 거래를 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선 유일의 원양 해운사가 부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감사원이 주요 공제회를 뒤로 하고 산업은행을 집중 감사하는 배경에도 이목이 쏠린다.
금융사들은 HMM 매각의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NH투자증권처럼 연초부터 치고 나간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인수금융 주선사들은 작년에 비해 아쉬운 성적표를 냈다. 하림과 동원 모두 최대 3조원의 인수금융을 활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 해의 아쉬움을 일거에 해소할 기회로 보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유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터라 걱정이 많은 분위기다.
A 금융사 관계자는 “LX그룹이 발을 빼고 HMM 주가까지 고공행진 하면서 거래 성사 기대감이 작아졌다”며 “인수후보들이 시가만 6조원이 넘는 HMM을 인수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본입찰이 형식적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B 금융사 관계자는 “잠재적으로 6조원 아래까지 매각가가 낮아지는 분위기였지만 막판 주가가 뛰면서 거래 성사가 쉽지 않아졌다”며 “금융사 입장에선 품만 많이 들이고 남는 건 없는 거래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하림과 동원 모두 강력한 의지를 보인만큼 HMM 매각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금융사의 수고도 빛을 보게 되는데, 이후엔 또 다른 고민이 이어질 수 있다.
HMM 매각은 국내 M&A 사상 손꼽히는 규모의 인수금융 활용 거래가 될 수 있다. 이런 거래는 결국 국내의 웬만한 금융사는 모두 참여해야 하는데, 많은 곳들이 아직도 조선·해운업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대주단을 구성하기 위해 참여수수료를 나눠주면 주선사의 먹거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인수후보의 경우 6%대 인수금융 금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7%대 금리로 조정되긴 했지만 거래의 어려움에 비하면 썩 만족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부 자금을 목전까지 끌어다 쓰면 상환 계획을 아무리 잘 짜도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미매각에 따른 칼바람이 불었던 증권업계에선 재매각이 잘 될 것이냐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C 금융사 관계자는 “해운 업황이 꺾이는 때 산업 이해도가 낮은 금융사들이 인수금융 기회를 노리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며 “상환 계획을 아무리 잘 짜더라도 결국 기저엔 HMM의 현금을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에 금융사 입장에서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D 금융사 관계자는 “HMM 매각이 성사될 경우 홈플러스 M&A 이후 최대 수준의 인수금융 거래가 될 것”이라며 “증권사 입장에선 재매각에 실패해 자산이 묶일까 걱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