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 등 드래그얼롱 행사해 경영권 매각 나설 듯
3800억 투자한 국민연금 좌불안석
박성하 사장 등 11번가 연관 인사 책임론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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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이 11번가 투자 지분에 대한 콜옵션 행사를 결국 포기했다. 향후 11번가의 운명은 이에 투자한 사모펀드(PEF) 주도 아래 결정될 전망이다.
29일 SK스퀘어는 이사회를 열어 재무적 투자자(FI)가 보유한 지분을 되사는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H&Q코리아 및 국민연금·새마을금고 등은 드래그얼롱(Drag Alongㆍ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하고 SK스퀘어가 보유한 지분 전량을 포함해 외부에 매각할 권리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8년 FI들은 11번가에 대해 2조7000억원(지분 100%기준)의 기업가치를 인정, 지분 18% 가량을 기준으로 5000억원을 투자했다. 이 가운데 3800억원 가량이 국민연금으로부터 나온 투자금이다.
이후 11번가의 기업가치는 계속 떨어지면서, 최근 SK스퀘어가 큐텐(Qoo10)과의 매각 협상에서 거론된 기업가치는 지분 100% 기준 1조~1조2000억원 수준에 그쳤다. 이 금액조차 매각자-인수후보 사이에서 이견이 많아 합의를 보지 못했다.
관건은 이제 FI들이 얼마만큼 11번가를 높은 가격에 매각을 성사시키느냐 여부다.
FI들은 SK그룹으로부터 연간 약 3.5%의 수익률을 보장 받았다. 투자원금 5000억 기준으로 원금과 보장된 수익을 합치면 대략 6000억원 수준.
드래그얼롱을 행사해 지분 100%를 매각하게 되면, 원리금 정산은 워터폴(Water Fall) 방식, 즉 FI가 원금 및 이자를 선취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에 따라 6000억원 이상의 경영권 매각가격이 나오면 국민연금과 FI들은 손실을 피하게 되지만, 차액이 많고 적음에 따라 SK스퀘어의 손실여부가 확정된다.
이번 콜옵션 포기로 SK의 손실을 확정하는 '결정권'을 FI들에게 넘겨준 셈이다.
SK스퀘어는 현재 11번가 지분 약 80%의 장부가치를 1조500억원으로 반영했다. 지분 100%가 1조원 이하로 매각된다면 수천억원의 장부상 손실이 불가피하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앞으로 FI가 주도하는 경영권 매각 작업에서 SK그룹이 얼마나 잘 협조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결국 지난 5년간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진 데 대한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결국 11번가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걸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2018년엔 3조원을 넘보던 2023년 기업가치가 1조원에도 못미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과 약속했던 기업공개(IPO)도 결국 실패했다.
현재 상황만 두고본다면 11번가는 쿠팡·네이버 등 토종 유통 공룡들과의 경쟁에서 결국 도태했고 알리바바·큐텐 등 외국계 유통기업들과 비교해 특별한 차별성을 나타내지 못했다. 아마존과의 협업으로 잠시 주목받긴 했지만 실적과는 직결되지 못했다. 광군제와 블랙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 등 연말에 집중돼 있는 유통기업의 행사에서도 11번가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사실상 11번가 사업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이 가운데 11번가는 이달 만 35세 이상, 5년 이상 근무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 계획을 밝혔다.
결국 5년새 3분의 1 토막, 그 이상의 하락을 방치한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K그룹은 엑스포 유치전이 끝난 이후 대규모 임원인사가 예고돼 있었다.
11번가의 투자유치는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을 비롯해 SK그룹의 M&A를 담당한 핵심 인사들의 치적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러나 현재로선 과거 투자유치를 주도했던 인물들 가운데 11번가에 관여하는 인사는 없는 상태다. 이번 콜옵션 행사 여부를 두고 잡음이 일었던 배경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성하 SK스퀘어 대표이사는 이번 매각 작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중 하나인데 역시 책임론에선 자유로울 수 없는 인사중 하나로 꼽힌다.
PEF 업계 한 관계자는 "큐텐과의 11번가 매각 협상 과정에서 SK측의 의사결정이 매번 상당히 지연됐는데 이는 이번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지고 주도할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매각 실패는 물론이고 지난 수년 간 기업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게 방치한 경영진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인사가 어떻게 결정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SK스퀘어의 콜옵션 포기가 이사진의 '배임' 이슈를 회피하게 위한 전략이란 평가도 있지만, SK그룹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크게 떨어지게 된 계기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