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도 불완전판매 가능성 염두에 두고 은행 비판
다만 불완전판매 입증 쉽지 않아…과거 사례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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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금감원)장이 최근 불거진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사태와 관련해 금융권의 책임을 지적하는 가운데 불완전판매 입증이 가능할지 여부를 두고 시선이 쏠린다. 그간 라임·옵티머스, DLF(파생결합펀드) 사태와 관련해 일부 소비자들이 보상받은 전례들이 있지만 금번 ELS 사태는 상품구조나 범용성 등을 고려해볼 때 상황이 다르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 연계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판매잔액은 약 8조4100억원이다. 은행별로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판매잔액은 KB국민은행이 4조7726억원으로 가장 많고 NH농협은행(1조4833억원), 신한은행(1조3766억원), 하나은행(7526억원), 우리은행(249억원) 순이다.
문제가 되는 상품은 홍콩H지수를 기초로 두는 ELS로 녹인(Knock-in)형과 노녹인형으로 나뉜다. 녹인형은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통상 가입 당시 가격의 50%)로 한 번이라도 떨어지는 순간, 만기 시점의 기초자산 가격이 가입 당시보다 30~35% 넘게 떨어지면 손실이 발생한다. 반면 노녹인형은 계약기간 기초자산 추이와 상관없이 만기 시점에 기초자산 가격 하락폭이 대략 50~60%보다 작으면 원금과 이자를 보장해준다. KB국민은행은 대체로 녹인형 상품을 많이 판매했고, 이 때문에 홍콩H지수가 내년 상반기 만기 시점에 최소 30%가 오르지 않는다면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처럼 ELS로 손해를 볼 금융소비자들이 많아지자 금감원에서도 불완전판매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고 사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원장은 11월29일 한 간담회를 마치고 은행들을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놨다. 소비자 피해예방 조치를 다 했다고는 하지만, 이는 예방을 했다기보다 ‘자기면피’를 했다는 의미로 들린다는 의견을 내놨다.
ELS 소비자들 역시 과거 라임이나 옵티머스 펀드, DLF 등의 사례와 비교하며 은행권의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손실이 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며 은행 직원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금융권 및 법조계에서는 ELS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우선 ELS는 라임이나 옵티머스와 같은 사모펀드가 아닌, 공모용 범용상품이 많아 상품구조가 비교적 명확하고 단순하다는 지적이다. 과거 환매 중단된 라임펀드는 유동성이 떨어지는 사모사채나 메자닌 채권, 무역금융 등에 투자했던 상품으로 모펀드 밑에 수십 개의 자펀드를 둬 비교적 복잡한 구조로 구성됐다.
지난 2018년 문제가 됐던 DLF와도 다소 결이 다르다는 의견이 많다. 당시 해당 상품은 독일 국채 10년물 채권의 만기수익률을 기초자산으로 두는 펀드로, 만기 시 4%의 금리를 제공하고 손실 조건에 해당하는 경우 손실 배수에 비례해 손실이 발생한다. ELS와는 다르게 손실 구간이 세분화되고 손실 조건이 다양하게 구성돼 판매 과정에서도 다소 복잡한 설명이 수반된다는 의견이다. 또, DLF는 당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특정 은행에서만 판매돼 특수성을 띄고 있지만 ELS는 이와는 달리 판매사들이 많고 대중적인 상품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점 때문에 판매규모에도 차이가 있다. 과거 DLF의 경우 판매잔액이 약 수천억원 규모에 그쳤다면 ELS는 당장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판매잔액만 8조4100억원 수준에 이른다.
증권사에서 오랜 기간 파생상품 구조를 연구한 한 고위 임원은 “ELS는 2000년대 초반에 처음 상품이 나왔고, 홍콩H지수를 기반으로 하는 상품은 한 10년 정도 됐다”라며 “지점별뿐 아니라 회사별로도 상품 구조에 큰 차이가 없는 범용성이 큰 상품이라 과거 문제가 됐던 DLF나 라임·옵티머스 등의 사모펀드와는 결이 다르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ELS 소비자별로 피해보상규모나 보상 여부가 갈릴 것으로 내다본다. 즉, ELS에 상당한 지식을 가졌거나 여러 번 ELS에 투자한 이력이 있다면 불완전판매에 해당할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국내 대형 로펌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ELS 소비자 중에는 전문투자자 못지 않게 투자 실력이 있는 개인투자자도 적지 않다”라며 “다만 피해 발생 시 이들이 모두 선량한 피해자로 둔갑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을 잘 구분해야 해서 금감원도 골치가 아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