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물러나며 IB들도 새 파트너 물색 분주할 듯
SK와 돈독한 CS는 UBS와 통합…모든 IB들에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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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은 이번 정기인사에서 큰 변화를 줬다. 오랜 기간 주력 계열사들을 이끈 부회장들이 후선으로 물러나며 새로운 경영진들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오랜 치세만큼 영향력이 상당했던 부회장들이 뒤로 물러남에 따라 투자은행(IB)들은 SK그룹 거래를 따내기 위해 다시 관계를 다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지난 7일 SK그룹은 2024년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선임됐고, 7개 계열사 대표를 교체하며 50대 CEO를 전면배치했다.
가장 큰 변화는 부회장들의 역할 축소다. 2017년 이후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이끌어 온 조대식 의장은 SK㈜ 부회장으로서 자문 역할을 맡기로 했다. 장동현 SK㈜ 부회장은 직을 유지하면서 SK에코플랜트 각자 대표를 맡기로 했고,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은 대표이사직을 내려놨다.
이들은 2016년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경영진이 대거 일선에서 물러나며 부상했고 이후 그룹 주력으로 군림했다. 여러 해 전부터 퇴진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자리를 지켜왔고 이번에야 한 걸음 뒤로 물러나게 됐다. 유정준 부회장과 서진우 부회장은 그보다 먼저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부회장들의 시대가 저물어감에 따라 그룹의 경영 방침도 달라질 전망이다. SK그룹이 자본시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만큼 시장 관계자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 거래는 실무진에서 절차에 따라 자문사를 선정해 진행했어도 뒤늦게 자문사가 추가되거나, 여러 자문사가 내정됐다가 한 곳으로 축소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공개입찰에서 예상 밖의 투자사가 거래를 따내는 사례도 있었다. 이런 거래 중 상당수는 자문사가 수뇌부와 친분을 이용해 수행 실적을 따내거나 개인적인 교분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지적이 있었다. 부회장과 직접 소통하거나 부회장의 복심과 소통이 돼야 일감을 따낼 수 있다는 설왕설래도 적지 않았다.
SK그룹 관련 거래를 자주 맡던 IB들이 변화를 크게 체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매년 정기인사 후 IB와 경영진이 새로 관계를 맺는 것은 일상이지만 이번엔 그룹의 중추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난만큼 그 폭이 클 수밖에 없다. 계열사 수장들도 대거 바뀐만큼 새로 공을 들여야 한다. 반면 지금까지 SK그룹 일감을 많이 따지 못했던 곳들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는 IB는 물론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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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는 국내 IB 시장의 환경도 크게 바뀐다. 지금까지 SK그룹 관련 거래에서 가장 두각을 보였던 IB는 이천기 부회장이 이끄는 크레디트스위스(CS)였다. 다만 CS는 UBS에 통합되는 중이고, 이천기 전 CS 부회장은 미국계 IB 제프리스 (Jefferies)와 함께 IB 복귀를 노리고 있다.
CS가 SK그룹 부회장들의 퇴진 이후에도 SK그룹 일감을 계속 따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프리스 한국 지점도 CS 출신 인력들을 영입하며 SK그룹 일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제프리스도 본격적으로 한국 사업을 개시하는 데는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다른 IB들에도 기회가 돌아갈 여지가 많다.
한 외국계 IB 임원은 "CS가 UBS와 통합되고 제프리스도 한국에서 기반을 닦을 시간이 필요하다"며 "SK그룹 일은 어느 IB라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내년 SK그룹에서 얼마나 매력적인 일감이 나올지는 별개 문제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SK㈜로 나뉘었던 투자조직을 SK㈜로 통합하고, 투자 조직도 줄이기로 했다. 플러그파워나 베트남 투자 자산들의 가치가 떨어졌고, 인텔 낸드사업부(솔리다임) 투자에 대한 질책도 나오고 있다. 최근엔 11번가를 둔 논란이 이어졌다. 당분간 SK그룹이 적극적인 투자 활동을 펴기도 좋은 사업을 내놓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