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딜 가뭄 속 역성장 우려까지
삼정은 선도적으로 세대교체 단행
40대 중반 젊은 리더 체제로 전환했지만
김이동 ‘매직’ 지속할지 관심 커
선배 파트너들 이끌고 성과보여야
M&A 시장 트랜드 변화도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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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언젠가 제 지인이 “성공이란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김이동 삼정회계법인 재무자문 부문 대표가 고객들에게 보내는 레터 형식 글의 한 대목이다. 최근 빅4 회계법인에선 삼정의 세대교체가 화두다. 김 대표는 뛰어난 성과를 기반으로 젊은 나이에 재무자문 부문 대표 자리를 거머쥐었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기대반 우려반’ 시선으로 보고 있다. 딜 가뭄이 이어지고 있고, 내년도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빅4 회계법인 공히 일감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삼정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이동 체제’에 대해서도 온전한 세대교체인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지난 9월 삼정은 김이동 부대표를 재무자문 부문대표로 선임하는 갑작스런 인사를 단행했다. 김 대표는 1977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15년부터 재무자문 5본부를 맡아왔으며, 2021년부터는 ‘M&A' 센터 리더를 겸임하고 있다.
해당 인사는 구승회 재무자문 부문 대표 임기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단행됐다. 실적하락에 대한 우려 속에서 선제적 인사를 단행했다는 게 삼정 측 설명이다. 김이동 대표의 발탁 배경도 삼정의 딜 부문을 업계 최상위권으로 올린 데 기반한다. 특히 김 대표는 M&A 업무를 회계실사를 넘어 자문으로 확장한 장본인이다.
한 빅4 회계법인 관계자는 “그간 회계법인이 글로벌 IB의 영역인 자문 업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었다는 시각이 팽배했다”라며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M&A 자문 업무로 외국계 IB를 제친 김 대표의 실적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긴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발판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대표는 2000년에 삼정에 합류하게 된다. IMF 이후 M&A 거래가 폭발하고, 글로벌 IB를 통해서 자본시장이 선진화되기 시작한 시기다.
당시 삼정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고자 소수정예로 우수인력을 차출해서 당시 첨단 금융기법 등을 통해서 자문을 도와주는 ‘삼정 투자자문’이란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다. 그 멤버 중 하나가 김 대표였다. 당시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은 대기업, 사모펀드 창업, 글로벌 IB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서울대 출신의 회계사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인재들이 모였다”라며 “다른 동료들은 회계법인을 떠났지만 김 대표는 삼정에 남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간 승승장구를 했지만, 앞으로 남은 숙제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대표에 올랐지만, 여전히 그 보다 시니어 파트너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6월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김 대표보다 개업경력이 긴 파트너는 30여 명에 이른다. 이들 중에 일부는 김 대표 산하 본부의 본부장을 맡고 있다. 김 대표가 재무자문을 이끌긴 하지만 시니어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세대교체냐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히려 현 체제가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딜 가뭄 속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젊은 리더를 발탁하는 게 옳았냐는 공격이 가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시장 탓으로 돌릴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M&A 시장의 판도가 바뀐다면 시장 탓만으로 돌리기 힘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 대표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점은 코로나 시기와 겹친다. 인베스트조선 집계 리그테이블 순위에 따르면 2020년 이전만 하더라도 글로벌 IB에 이어 삼정은 5~10위권을 형성했다. 하지만 2021년 5위권 안으로 진입했고, 2022년에는 연간 재무자문 부문 리그테이블 순위 1위에 오른다.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회계법인까지 굵직한 일감이 몰렸고, 그 기회를 삼정이 가져간 바가 컸다.
하지만 또다시 이런 시장이 열릴까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M&A 시장도 양극화가 이뤄지면서 빅딜은 다시금 글로벌 IB 등으로 몰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M&A 자문 순위는 글로벌 IB와 이들에 파생된 IB 부티끄들이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M&A 시장에선 빅4는 여전히 회계실사 위주의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유동성 파티’가 끝난 상황에서도 김 대표는 여전히 회계법인 M&A 자문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더불어서 ‘딜러’에서 대표로서 존재감이 더 중요해진 시기다. 10본부를 이끄는 리더로서 이제는 ‘젊다’·‘성실하다’ 이상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선 김 대표가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빅4 회계법인 파트너는 “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 외부 충격 없이 세대교체가 어려운데, 이런 외부 충격 없이 세대교체가 이뤄지다 보니 김 대표가 앞으로 조직을 어떻게 이끌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라며 “다만 온전한 세대교체라고 보기 힘들고, 큰 조직을 이끌다 보니 김 대표가 새로운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