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들어서도 총선 부담에 미온적 기류
대형 사고 없을 총선 전이 자금 조달 적기?
시장 긴장 여전…모두 수혜 보긴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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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내년 초 기업들의 자금 조달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분주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내내 자본시장이 침체했고 내년 국회의원 선거(총선) 이후 경제 환경 변화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극적인 경기 회복은 쉽지 않고 많은 기업들이 한계를 노출할 것이란 우려가 여전하다. 총선 후 구조조정 봇물이 터지면 자본시장이 급냉각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2021년 4.3%에 달했던 한국 경제성장률은 작년 2.6%고, 올해는 1%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주요 지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1년 전보다 높여 잡았지만 한국은 반대였다. IMF와 한국은행 모두 내년 한국의 성장률이 2%대를 회복할 것으로 보지만 올해의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일 것이란 평가도 있다.
자본시장엔 낙관론보다 신중론이 여전히 우세하다. 매년 성장을 기본 전제로 실적 목표를 잡던 기업들은 내년엔 유지, 혹은 축소도 감수할 분위기다. 작년에 이어 올해 정기인사에서도 인사폭을 최소화하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신사업이나 확장보다는 재무 역량이 부각되는 양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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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긴축에 고전했던 기업들은 내년 초 공격적인 자금 조달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 후 급히 조달한 자금을 차환해야 하는 기업이나 올해 투자금을 다 채우지 못한 반도체·배터리 기업들이 회사채 시장을 적극 찾을 전망이다. 시중은행의 기업여신 확대 경쟁이 치열한 상황을 기업들이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기업은 내년 중 상장(IPO)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찌감치 증권사와 접촉하고 있다. 투자은행(IB)들도 그간 받아둔 IPO, 사업부 매각, 투자지분 정리 등 일감을 실행할 방안을 모색 중이다. 반대 쪽엔 염가 매수 기회를 노리는 투자자가 있다. 기업과 시장 모두 연초 효과를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내년 4월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는 중요 경제 변수로 꼽힌다. 총선이 그간 가려져 있던 한국 경제의 어두운 민낯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팬데믹 이후 정부 주도의 지원책이 대대적으로 펼쳐졌고, 이는 이후 2년간의 호황으로 이어졌다. 실적이 좋지 않아도 차입금 만기는 순조롭게 연장되니 무너지는 기업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레고랜드 사태, 새마을금고 부실 등 굵직한 금융 불안 신호가 나타날 때마다 정부 당국이 적극 진화에 나섰다.
착시효과로 언제까지 현실을 가릴 수는 없다 보니 이번 정부 들어 긴축이나 순차적 구조조정을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아졌다. 정부 부처나 정책금융기관 등에서도 일찌감치 위기기업 선별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더 미루다간 손 쓸 기회조차 날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한계에 다다른 기업의 구조조정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시장이 위기감을 느낄 만한 대형 사건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모습이다. 실물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 구조조정까지 겹치면 대상 기업과 산업은 물론 증시와 자본시장으로도 불안감이 확산할 수 있다. 당장의 총선 표만 따지자면 정부와 여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당정 고위층에선 총선까지는 구조조정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종료 예정이던 대출 상환유예 조치도 시장 반발에 밀려 2028년까지로 연장했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올해 들어 관련 정부부처나 정책금융기관에선 구조조정 충격파를 최소화하려면 한계기업들을 순차적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다만 표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정부 여당 고위층에선 총선 이후에 구조조정을 본격화하자는 기류가 강했다”고 말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든, 여당이 승리해 동력을 얻어서든 총선 이후에는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자본시장을 일거에 경색 국면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반대로 보면 총선 전까지는 시장에 부담을 안길 대형 사고가 터지지 않게 관리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당장 내년 경제의 뇌관인 부동산 분야만 봐도 건전성 관리 기준을 조이고 자기책임 원칙을 강조하지만 실제 부도까지는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모순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시중은행 등 금융사도 기업 지원에 적극 협조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 상황들을 감안하면 내년 1분기가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최적기일 수 있다.
모든 기업이 자금 조달의 수혜를 보긴 어렵다. 여유가 있는 곳들은 미리 쓸만한 자산을 팔았고, 공매도 금지 조치로 교환사채(EB) 카드는 활용하기 쉽지 않다. 더 이상 금리가 오르지 않는다 해도 지금의 금리 환경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 계열사라도 업황에 따라 시장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투자보다 회수가 급해진 사모펀드(PEF)들의 시선은 대기업과의 갈등을 거치며 더 깐깐해졌다. 비주력 자산은 시장의 관심을 끌기 어렵고, 핵심 자산을 내놓아선 위기감만 더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총선을 앞둔 정부 여당이 구조조정 고삐를 죄기는 어렵고 이는 곧 총선 전까진 기업들을 살려둘 것이란 신호로 볼 수 있다”면서도 “웬만한 기업이면 가만히 있어도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구간에 핵심 자산을 내놓는다면 진짜 위험한 상황이라는 점을 시장에 인식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