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혁신 없이 문제만 터지지 않길 바라
"당연한 결과…지금 삼성과 다르지 않아"
주가 조작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카카오
내부에서 잇따른 문제점 화수분처럼 터져
'형님' 버리고 공적 관리 시스템 갖췄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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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프로스포츠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29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한 LG트윈스' 그리고 '28년만에 2부리그 강등된 수원삼성'. 단순히 구단 순위만이 아니라 이 자체가 LG그룹과 삼성그룹의 현 주소 또는 앞으로의 미래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평가가 나온다. '선수빨'이 아닌, 구단과 프런트 같은 관리 조직의 능력 유무로 빚어진 결과다.
수원삼성 강등은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시작점은 2014년,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넘어가면서다. 이전보다 지원이 줄어드니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실제로 지난해 수원삼성의 연봉 지출액 순위는 전체 11개팀(김천 상무 제외) 중 8위에 그쳤고, 리그 성적은 그보다 낮은 10위였다. '삼성'이라는 큰 타이틀을 단 구단 입장에선 걸맞지 않는 투자 규모다.
돈이 다는 아니다. 수원삼성보다 돈을 훨씬 적게 쓰고도 성적은 낼 수 있다. 포항스틸러스의 지난해 연봉지출액은 10위에 불과하지만 리그 2위를 올랐고 연봉 최하위인 시민구단 광주FC는 리그 3위라는 기적같은 성적을 거뒀다. '돈'만이 문제가 아니라면 역시 조직 관리의 문제다.
수원삼성은 올해에만 감독이 네 번 바뀌었다. 부진한 성적에 대한 조급함이었다. 감독들에겐 자신들의 비전과 철학을 팀에 녹여낼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프런트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는 거라곤 수원삼성 출신 레전드들을 감독으로 앉히는 이른바 '리얼블루' 정책이었다. 이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폐쇄적인 이미지만 삼성에 각인시켰고 그 결과는 모든 책임을 떠안고 '토사구팽' 당한 팀의 레전드들이었다. 조직 관리 부재 그 자체다.
최근 삼성그룹과 다르지 않다. 올해 삼성그룹의 인사를 보면 '안전제일주의'가 떠오른다. "사고 치지 말라"는 인사 철칙이 계속돼서 반복되는 모습이다. 임원들 입장에선 사고만 치지 않으면 자리를 지킬 수 있는데 뭐하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성과를 내려하겠냐는 것이다. 수원삼성 프런트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재판은 이제 시작이고 결론이 날 때까지 큰 변화를 주기엔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너 경영인의 불확실성, 경영진의 안일함이 지속되는 동안 그룹 조직원들 사이에선 1등이 아닌 패배주의에 익숙해진다. 애플스토어는 새로 오픈할 때마다 문전성시인데 삼성의 플래그십 매장은 갈수록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어묵 국물 좀"이라는 이재용 회장의 웃음만이 올해 대표 장면으로 남게 됐다.
삼성에 폐쇄적이고 무사안일함이 자리를 잡았다면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의 '형님 리더십'으로 승승장구했던 카카오는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그동안에도 갖가지 모럴 헤저드로 논란이 많았지만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인수와 그 과정에서 빚어진 주가 조작 혐의는 카카오제국을 흔드는 촉매제가 됐다. 주요 경영진들이 검찰에 구속되고 본인에게도 수사의 칼날이 향해지자 김 센터장은 경영 일선에 복귀해야 했고 자의반 타의반 카카오는 쇄신에 나서야 했다. 김 센터장은 20여명의 카카오 및 카카오 계열사 경영진이 참석하는 '경영쇄신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본인이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또 외부 독립 기구인 '준법과신뢰위원회'를 출범시켜 독립성 보장을 약속했다. 매주 월요일 주요 경영진들이 모이는 비상 경영회의도 김범수 위원장이 직접 주재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카카오의 분란은 이제 시작인 것처럼 보인다. 김정호 경영지원총괄의 SNS 폭로가 기점이었다. ▲경영진 혹은 측근에 편중된 보상 ▲불투명한 업무 프로세스 ▲견제 없는 특정 부서의 독주 ▲특이한 문화와 만연한 불신과 냉소 ▲휴양시설·보육시설 문제 ▲골프장 회원권과 법인카드·대외협력비 문제 ▲IDC(인터넷데이터센터)·공연장 등 대형 건설 프로젝트의 끝없는 비리 제보 ▲장비의 헐값 매각 문제 ▲제주도 본사 부지의 불투명한 활용 등 나열하기에도 너무 많은 카카오 내부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카카오 조타수의 고발 내용과 임원진간의 내홍에 내부 임원과 직원들이 집단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위기는 이제 시작된 듯 하다.
노사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카카오 노동조합은 사측이 단체협약을 근거로 오프라인 시위와 온라인 전산망 활동에 대한 사전협의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한 것을 두고 반발했다. 노조는 김범수 위원장이 이끌고 있는 경영쇄신위원회에 일반 직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카카오엔터가 드라마 제작사인 '바람픽쳐스'를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인수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져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자 노조는 카카오엔터 사무실 앞에서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위를 열기도 했다.
모두가 인지하다시피 카카오의 조직 관리 시스템 미비는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다. 스타트업 단계에서 '형님 리더십'은 강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그래야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이 만들어지고, 그 조직이 많아지고, 회사가 계속 세워지고, 기업집단에 포함될 정도로 그 규모가 커지면 개인에 의존하는 리더십의 수명은 한계에 다다른다. 카카오는 지속적인 인수합병으로 한국 굴지의 IT기업이 됐고,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사세를 키웠다. 하지만 회사의 조직 관리 시스템은 전무하다는 평이 안에서부터 삐져나오고 있다. 조직에 필요한 리더를 양성 또는 영입하기보단 형님과 가까운 이들에게 '좋은 게 좋은' 회사였다. 결국 이 모든 책임은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구축할 생각을 못한 창업자에게 있다.
재계 관계자는 "아무리 창업 공신 또는 창업자와 개인적으로 가깝다 하더라도 조직이 기업집단 수준으로 커지게 되면 창업자는 냉철하게 회사가 더 이상 사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공적 시스템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한국의 모든 재벌들이 그 길을 걸어왔고 전철 또는 반면교사 삼을 수 있었는데도 카카오는 이를 행하지 않았고 결국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빈 강정인 현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IT업계 관계자는 "예전같지 않은 실적과 여러 사회적 논란을 빚었던 엔씨소프트가 사모펀드 대표를 공동대표로 앉히는 결정을 내린 것도 결국 창업자 중심의 조직 관리는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이는 상대적으로 빨리 조직 정비에 나서면서 관련 이슈가 많지 않은 네이버나 쿠팡과 비교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이 문제는 예상보다 너무 늦게 터졌고, 그 만큼 파장이 더 크다. 카카오제국이 위기에 빠진 것은 지정학적 분쟁도, 고금리도, 경기 불황도 아닌 내부 조직 관리 문제였다. 조직 관리 문제는 삼성, 카카오뿐 아니라 여러 기업들에 던져진 화두이기도 하다. 외부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이제 변수가 아니고 상수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내부 관리다. 그 시작은 조직 관리이고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면 '법을 지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준법감시위원회, 준법과신뢰위원회 같은 '준법(遵法)'을 두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한편 카카오는 새 대표로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를 선임했다.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는 설명이다. 외부출신인 정 대표가 카카오를 근원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