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기업활동 이어지며 자문사들도 분주
해 넘기기 전 계약·수임·수금 성과내란 압박 커
내년 시장 회복 불투명…먹거리 경쟁 치열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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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기업들은 예년보다 인사를 앞당기거나 쇄신인사를 단행하며 일찌감치 엄혹한 환경이 이어질 내년 대비에 나섰다. 금융사들도 영업 고삐를 죄기 위해 인사를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기업들이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예년보다 일찍 문을 닫는 듯했던 자본시장도 연말까지 분주한 분위기였다.
올해 최대 M&A인 HMM 매각은 우여곡절 끝에 하림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LG디스플레이는 상장 후 처음으로 유상증자 카드를 꺼내들며 내년 준비에 나섰다. CJ ENM은 미국 자회사 피프스시즌의 투자 유치로 한숨을 돌렸다.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가 연말 자본시장을 달궜고, 3분기 일손을 놓고 있던 인수금융 시장도 4분기엔 숨통이 트였다.
자문사들도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연말 시장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지만 올해 전체적인 성과는 부진했기 때문이다. 상당 수 거래가 지연되거나 무산되면서 성장세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해가 가기 전에 신규 일감을 따내거나 계약이라도 체결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엿보였다. 연말이면 수행했거나 진행 중인 자문의 수수료 정산에 분주한 게 당연하지만 올핸 특히나 경영진의 압박이 큰 분위기다.
대형 거래가 자취를 감추며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 주목받은 기업공개(IPO), 회사채 발행 등은 국내 증권사에 공이 돌아갔다. 이오플로우 매각 무산 등 조단위 실적을 반납한 사례도 있었다. 작년 이맘때 내년에 할 좋은 일감을 많이 쥐고 있다며 장밋빛 전망을 하는 곳이 있었지만 실제 실행 사례는 드물었다. IB들은 지금도 좋은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다 자신하고 있는데, 거래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압박은 훨씬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한 IB 임원은 “올해 기대를 걸었던 거래 리스트에서 성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며 “하반기 만지작거리는 거래는 내년을 목표로 하는데 상대방을 찾기 어려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예년보다 살풍경한 연말을 보냈다. 세대교체 바람 속에 자본시장의 터줏대감들이 대거 뒤로 물러났고, 후속 인사 폭도 컸다. 돈이 되지 않고 사고가 많이 나는 부서는 축소·폐지하거나 승진자를 줄였다. 사모펀드(PEF)에 투자하기도, 포트폴리오 관련 일감을 따내기도 쉽지 않았다. 현실적인 내년 실적 목표를 세우려는 분위기가 있지만 그조차도 달성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연말에도 여유를 즐기기 어려웠다.
삼성증권은 HMM 매각을 두고 올해 내내 마음을 졸였는데,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지 안도하긴 이르다. 미래에셋증권의 쉐어칸 인수는 11월 계약 체결 예정이었으나 지연되다가 매도자 BNP파리바 인사들이 연말 휴가에 들어가기 직전 합의에 도달했다. 올해 전주페이퍼 매각에 사활을 걸었던 모건스탠리PE는 세밑에야 태림페이퍼(인수자문 미래에셋증권)와 계약을 체결했다.
이 외에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한국투자증권 주관), 팬오션 유상증자(NH), LG디스플레이 유상증자(한국·NH·KB·대신), HD현대마린솔루션 상장(KB) 등이 연말 화제가 됐거나 내년 주목 받을 거래로 꼽힌다. 연초 기업들의 회사채 시장 방문이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량하고 재매각 부담이 적은 고객을 잡는 것이 주요 증권사의 숙제로 떠올랐다.
인수금융 시장도 M&A 기근의 직격탄을 맞았다. 3분기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는데 그나마 4분기는 일감이 있었다. 연내 배당재원 확보, 불확실성 선제적 대응 목적의 리파이낸싱(차환) 거래가 늘어난 덕을 봤다. HMM 매각 결과에 따라 내년 대규모 성과가 기대되는 곳들도 있다. 내년 M&A 시장의 회복 가능성은 불투명하고 PEF의 부실 포트폴리오가 늘어나는 추세인 점은 고민이다. 시장금리 하향 전망 속에 리파이낸싱 거래가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법무법인들은 성장세가 꺾일까 걱정이다. 인력 증가만큼 일감이 늘지는 않았더라도 보이는 전체 매출은 늘어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 올해 내내 이어진 자문료 조기 정산 압박이 연말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고객사의 인사가 진행 중인 거래와 내년 수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회계법인의 상황도 엇비슷하다. 일감을 가려 받을 수 있던 시기에 파트너와 주니어 인력을 대거 늘린 것이 독이 된 분위기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 및 축소를 단행한 곳도 있었다. 회계법인들은 올해 초중반 회계연도 종료를 앞두고 실적 만들기에 집중했는데, 이번 회계연도 실적을 다시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표면적으론 일을 많이 수행했지만 대형 거래가 줄어들고, 고객사가 자문료를 감축한 데 따른 반사효과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엔 또 경쟁사, IB, 증권사와 일감 쟁탈을 펼쳐야 한다.
다른 IB 관계자는 “내년엔 IB들도 주니어 인력을 대거 뽑아 소형 딜을 맡기는 등 회계법인처럼 영업망을 넓히려는 분위기” 라며 “고객의 자료 확보, 산업분석 등 요청을 들어주면서 자문 기회를 노리는 곳들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