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전주페이퍼·이베스트증권 등 사례
KKR도 나비스코 십수년만에 회수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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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새해에도 대형 사모펀드(PEF)들의 회수 고민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팬데믹 유동성 장세에 투자한 곳도 부담이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를 회수 기회를 놓친 곳들이 더 뼈아프다. 기업들은 일찌감치 긴축 신호를 보냈고, 서로 사정을 아는 PEF들이 경쟁사의 숙제를 대신 풀어주긴 쉽지 않다. 오래 묵힌 포트폴리오는 회수 시기가 더 늦어지거나 과감한 손절을 택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에서 PEF가 10년 이상 회수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시장이 좋을 때 인수했다가 산업 환경이 바뀌고, 여러 차례 회수 시도가 실패하면서 이도 저도 못한 경우다. 갈수록 기업을 인수한 후 회수에 나서는 기간이 짧아지는 PEF 시장의 트렌드와도 거리가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팬데믹 때와 같은 유동성 장세가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며 “지난 수년간 비싸게 샀든, 비싸게 팔 기회를 놓쳤든 포트폴리오 장기화 사례가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달 MS PE는 태림페이퍼와 전주페이퍼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2008년 신한PE와 함께 인수한 후 신문용지 산업이 하향세로 접어들면서 회수에 애를 먹었다. 이미 통상의 회수 기간이 훌쩍 지난만큼 출자자(LP)들의 관심은 크지 않았지만 MS PE 본사에서 이제는 무조건 팔아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해 거래가 완료되면 16년만에 회수에 성공하게 된다.
G&A PE가 2008년에 인수한 이베스트투자증권 회수도 결말이 가까워지고 있다. 인수 당시 결성한 PEF(3350억원) 자금의 3분의 1을 LS네트웍스가 출자했다. 이후 소득없는 매각 작업과 만기 연장을 거듭하는 사이 다른 출자자(LP)의 풋옵션을 받아준 LS네트웍스의 PEF 내 지분율은 약 99%까지 높아졌다. 자본시장법상 PEF 운용기한(15년)이 다가오자 LS네트웍스는 이베스트투자증권을 인수하기로 했고, 지난 4월 금융당국에 대주주 변경 승인신청을 냈다.
선진 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도 장기 포트폴리오에 발이 묶인 사례가 적지 않다.
글로벌 수위권 PEF인 KKR의 담배 및 식료품 제조사 RJR 나비스코(RJR Nabisco) 인수가 대표적이다. KKR은 1976년 설립 이후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기법을 선도해왔는데, 1989년 RJR 나비스코 인수에선 인수대금 251억달러 거의 대부분을 차입으로 조달하며 주목받았다.
KKR은 몇 년 뒤 담배 사업과 식료품 사업을 분리해서 매각하는 안을 추진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담배 사업은 매각 실패 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1995년 상장(IPO)을 통해 자금을 회수할 길이 열렸다. 나머지 식음료 사업은 2000년 말에야 필립모리스에 149억달러를 받고 매각하기로 결정이 났다. 투자부터 최종 회수까지 십 수년이 걸렸다.
영국계 구조조정 전문 펀드 힐코 캐피탈(Hilco Capital)은 2009년 자기 회사 덴비(Denby)에 투자했다. 은행이 갖고 있던 덴비의 9000만파운드(약 1500억원) 짜리 부실 채권을 3000만파운드에 샀다. 2014년부터 매각을 추진했으나 실적 개선세가 확인되면서 2015년 매각을 일시 중단했다. 이후 최근까지도 몇 차례 매각을 시도했으나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팬데믹 이후 매도자와 원매자의 시각차가 여전히 큰 상황이라 당분간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국내에서도 투자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2015년), 한앤컴퍼니의 쌍용C&E(2016년), IMM PE의 에이블씨엔씨(2017년) 등 대형 PEF도 장기 보유 포트폴리오가 있다. 다만 대형사는 리파이낸싱과 배당, 컨티뉴에이션펀드 등 소형사에 비해 회수까지 활용할 카드가 많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