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V 정보 사전 공유해 짬짜미해 부당 이득 취해
은행 "부당 이득 취할 수 있는 구조 아냐" 항변에도
대통령 지시에 시작된 조사…과징금 부과 가능성↑
-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4대 시중은행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결론내고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업계에선 공정위가 무리하게 혐의를 적용했다며 실제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게 점친다. 다만 공정위의 조사가 대통령의 지시에서 시작한만큼 은행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제재 시 과징금 규모도 역대급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는 전날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에 담합 행위와 관련해 검찰의 공소장 격인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에는 4대 시중은행이 개인과 기업을 상대로 담보대출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거래조건에 해당하는 담보인정비율(LTV)을 사전에 공유해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은행들이 담보물에 대해 적용하는 LTV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LTV가 일정 비율 이상 오르지 않도록 서로 짬짜미를 했고, 그 결과 금융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다만 공정위가 은행권 담합 조사에 착수할 당시 제기했던 대출금리와 수수료 담합 의혹은 이번 심사보고서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LTV에 대한 '정보교환 담합'만 담겼는데, 정보교환에 따른 담합은 제재한 전례가 없는 만큼 은행권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담합 혐의가 입증될 경우 과징금은 관련 상품과 용역 매출액의 최대 20% 이내 범위에서 부과되는데, 은행의 매출에서 담보대출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과징금은 수천억원 규모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은행들은 억울하단 입장이다. 시중은행끼리 LTV와 관련한 정보를 참고 차 공유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한 적도 없고 취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란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지점 프라이빗뱅커(PB)는 "개인에게 나가는 담보대출은 주로 주담대(주택담보대출)인데, 이 LTV 비율은 정부가 최대 70%까지 규제하고 있다"며 "결국 그 아래에서 비율을 책정해야 하는데 산정 방식은 은행 별로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LTV 정보가 사실 그렇게 대단한 비밀도 아니"라며 "소비자들이 대출을 받으러 올 때 다른 은행들의 LTV를 알아보고 와 비교를 위해 알려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해서 이미 정해진 LTV를 조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무리하게 시중은행에 대한 담합 혐의를 적용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국회 관계자는 "사실 공정위의 은행권 담합 조사의 핵심은 금리담합이었는데, 이 내용은 빠지고 LTV 정보담합이 심사보고서에 담겼다"며 "LTV를 담합한다고 해서 은행에 돌아갈 이익이 제한적이란 점에서 공정위가 무리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4대 은행의 의견을 수렴한 뒤 제재 여부를 논의할 심의 일정을 정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은행에 대한 실제 제재로까지 이어지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지만,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조사인만큼 공정위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의 은행권 담합 조사는 지난해 2월 시작됐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금융사의 과도한 지대추구를 막을 방안을 강구하라"고 주문했고, 이에 공정위가 4대 시중은행에 NH농협·IBK기업은행까지 6개 은행에 대한 현장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충실히 소명하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입장을 밝히기 조심스러운 면이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의 입에서 시작된 조사인만큼 실제 과징금 부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은행들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