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 개발 사업성이 HMM 인수 안정성에도 영향
예상 개발 이익 커야 그룹 전체 유동성도 숨통
HMM 잔여 영구채 해소 때도 도움될 것이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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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그룹에 HMM 인수는 글로벌 선사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고, 양재 화물터미널 부지 개발은 숙원 사업이다.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두 사업이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면서 재무부담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해졌다. 하림그룹으로선 막대한 HMM 인수 부담을 해소하면서 개발 사업비도 차질없이 조달해야 한다.
당분간 부진이 예상되는 HMM의 사업보다는 양재동 개발 사업에서 나올 미래 유동성이 핵심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HMM 매각은 해를 넘기며 장기화하고 있다. 당사자간 계약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 결국 하림그룹이 HMM 인수 부담을 줄일 조건을 얼마나 얻어내느냐였는데, 해양수산부는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 유예 조건 등에 반대했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은 이달 중 HMM 매각 1차 협의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영구채 전환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좁혀나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림그룹은 이미 팬오션 유상증자(3조원), 인수금융(3조4000억원) 등으로 HMM 인수자금 조달의 얼개를 짜뒀다. 다만 팬오션은 주가 부진으로 시가총액이 2조원 수준으로 빠졌고, 인수금융도 한도 전체를 활용하긴 부담스럽다. 재무적 투자자(FI)의 조기 회수 허용 조건도 얻어내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해운업황 부진이 장기화할 경우 HMM 실적 및 주가 하락에 따른 부담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사이 하림그룹의 숙원인 양재 부지 개발 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하림그룹은 2016년 하림산업을 통해 양재동 이 땅을 샀다. 이후 서울시와 개발 방향을 놓고 이견을 보이며 사업이 표류했다. 지난달 말 서울시는 하림그룹이 제출한 도시첨단물류단지 개발사업 계획안을 교통 환경 개선 조건으로 통과시켰다. 지상 58층~지하 8층에 공동주택, 오피스텔, 연구개발 공간 등을 아우르는 총 사업비 6조8000억원의 대형 사업이다.
하림그룹 입장에선 두 대형 사업에 13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이중 먼저 현실화하는 것은 HMM 인수자금 부담이다. 하림그룹은 HMM의 내부 현금을 미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쓰겠다 했다. 해운업황 부진이 예고된 상황에선 HMM의 사업만으로 인수 부담을 완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 HMM 인수에 힘을 보태는 금융사나 투자사도 상환 안정성을 고심해야 한다.
양재 부지 개발 사업이 당장의 HMM 인수 부담을 완화하고, 향후 경영권을 안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당장 별개 사업의 자산을 유동화해 HMM 인수 자금으로 쓰지는 않겠지만 그룹 전반의 유동성 상황에 안정성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림그룹의 양재동 부지는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고 개발 사업도 표류하면서도 서울 강남권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란 평가는 유지됐다. 이 땅을 인수하고 개발에 나서는 것 자체가 특혜라는 지적이 있을 정도였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불안하다지만 이런 요지라면 개발 이익을 기대할 만하다. 개발 사업비 부담이 크지만 HMM 인수처럼 일거에 모든 자금이 필요하진 않다. 사업 진척에 따라 사업비를 넘어서는 이익이 예상된다면 그룹 전체 유동성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호반건설 역시 이 개발 사업을 매개로 HMM 인수에 힘을 보태게 될 것이란 시각이 있다. 금융사와 맺은 출자확약서(LOC)에 따라 호반건설이 HMM 지분을 직접 인수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팬오션의 영구채를 인수하는 등 방식으로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하림그룹의 HMM 인수에 관여하는 금융사들은 양재동 개발 사업에서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중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몇 년 간 이어질 거래 관계를 감안하면 한 그룹에 대한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이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양재 사업 전망이 밝으면 HMM 인수자금을 빌려주는 부담이 덜하고, 자산을 재매각(셀다운)하는 데도 유리해진다.
현재의 HMM 인수부담을 양재 사업의 미래가 나눠서 부담하는 셈이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주요 금융지주의 수뇌부들도 HMM 관련 먹거리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데 이들은 앞으로 양재 개발 사업에서도 중요한 자금줄 역할을 해야 한다”며 “양재 개발 사업에서 미래 유동성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면 금융사의 HMM 인수 자금 대출 부담이 줄어들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하림그룹의 HMM 인수부터 양재 사업 개발까지 꼬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HMM 경영권 지분 매각 후에도 1조6800억원 규모 영구채를 보유한다. 올해 5~6월에 3000억원, 10월 6600억원, 내년 7200억원 등 전환 일정이 돌아온다. 이 채권이 모두 주식으로 전환되면 하림그룹의 HMM 지분율은 약 39%, 산업은행 측은 약 33%가 된다.
확실한 경영권을 행사하기엔 아쉬운 지분이다 보니 하림그룹 측은 해당 전환 주식 중 일부를 먼저 인수할 수 있는 권리(우선매수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HMM 경영권 인수를 완료한 후 추가로 1조원가량의 자금을 다시 조달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때도 양재 사업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 금융사 임원은 “하림그룹이 향후 HMM 전환 주식을 추가로 사려고 하겠지만 자금 여유가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양재 사업이 순항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룹의 재무 부담이 안정화돼야 추가로 인수 자금을 구하는 것도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