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강조되는 투자팀 불만…윗선 간섭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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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투자팀 실무진들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은행 투자금융(IB) 부문 인력들의 전문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은행 차원에서의 투자 압박은 여전한 현실 탓이다. 국내 은행 특유의 수직적인 구조 때문에 펀드 출자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사례가 많아 실무진들의 애로사항이 크다는 전언이다.
지난해 12월, 은행권에서는 두 차례 커다란 전담은행 선정 사업이 진행됐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산하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이 선정하는 스마트공장 구축자금 금융지원 기관으로 하나은행이 선정됐다. 향후 3년간 1000억원씩, 총 3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비슷한 시기 중소벤처기업부 역시 R&D(연구개발) 자금 약 1조7700억원을 관장하는 전담은행으로 IBK기업은행과 하나은행을 낙점했다. 올해부터 3년 동안 조단위 국가예산을 예치하고 관리해 이에 따른 예금수익 일부는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대출을 내주는 식으로 운용한다. 국가 예산을 특정 은행에 예치하면 이자 및 운용수익이 발생하는데 이중 일부를 다시 정책성 자금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처럼 정부 주요 부처의 예산을 관리하는 전담은행은 국내 은행들이 치열한 경쟁 끝에 따내는 자리로 꼽힌다. 예산규모에 따라 많게는 수천억원 단위의 운용수익을 얻을 수 있는 데다 정부 주요 부처의 전담은행으로 선정됐다는 평판 역시 은행권에서는 탐나는 지위다. 지역 시금고 유치에 여러 시중은행들이 전력을 다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문제는 갈수록 은행간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행내 투자팀에 대한 압박 역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년간 진행돼온 전담은행 선정 방식 중 관련 산업분야 투자 여부에 따라 가산점을 주는 과정이 관례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중기부 R&D 자금 관련 전담은행을 선정사업은 총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집계하는데 그중 35점을 차지하는 항목이 R&D 수행기업 직간접투자 방안이다. 지원규모가 1000억원 이하일 경우는 가산점이 부과되지 않고, 해당 재원은 은행이 직접 마련한다. 스마트공장 관련 전담은행 선정 역시 비슷한 배점방식이다. 향후 3년 동안 스마트공장 참여기업 전용으로 직간접투자 지원규모를 적게 되어 있고, 해당 배점은 15점이다.
이처럼 대다수의 전담은행 공고에는 투자 관련 배점 항목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22년 산업기술 자금 전담은행 선정 당시에는 기술혁신전문펀드 출자 및 투자 활성화 지원에 관한 항목도 제시됐다. 23년부터 25년까지 3년간 모펀드 출자규모를 정하고 이행전략으로 투자 취약기업이나 지방기업 등의 활성화 방안을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당시에는 혁신펀드 출자규모와 이행전략 배점은 50점으로 전체 점수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에 은행 투자팀에 속한 실무진들은 펀드 출자시 선택권이 줄어드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펀드 조성시 특정 산업분야에 국한되는 등 제약 사항이 많은 데다 정부사업 특성상 소외기업 투자가 수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펀드 만기 시 수익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투자팀으로서는 부담이 크다는 전언이다. 최근 들어 은행 내부에서도 순환보직보단 한 분야의 전문성을 추구하는 행원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투자금융(IB)부서에서도 투자 자율성에 민감해하는 분위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담은행을 유치할 때 이에 따른 혜택이나 성과가 부서별로 다르다는 점도 공평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전담은행 유치는 통상 은행 기관영업부에서 담당한다. 하나은행은 기관영업그룹 내 기관영업부에서, KB국민은행은 기관고객그룹 내 기관영업본부, 신한은행 역시 고객솔루션그룹 내 기관영업본부를 두고 있다. 통상 이들 부서는 시금고 등 굵직한 자금 유치를 비롯해 크고 작은 기관과 지속해서 관계를 이어가는 역할을 한다. 반면 펀드 출자는 투자금융부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이해관계가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꼭 전담은행 유치와 관련한 압박이 아니더라도 윗선에서 여러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국내 은행 특유의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예로 과거 모 중견 그룹은 제조회사 인수하는데, 금융그룹 최고위층에 압력(?)을 행사해서 실무진들이 애를 먹었다. 당시 전 금융업권에서 기피하던 거래였기 때문에 실무자 입장에서도 부실 위험으로 이어질까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본적으로 은행은 영업 중심의 조직으로 커온 만큼 기업, 당국, 지자체 등 다양한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엮여있다. 이들의 눈치를 보는 과정에서 특정 분야 또는 목적의 펀드 출자가 강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특히 정권 교체 시기와 맞물려 출자 규모나 방향이 바뀐다는 의견이다.
법률적으로는 은행법상 재산상의 이익제공과 관련한 조항을 침해할 가능성도 있다. 은행법상 은행이 수신이나 여신을 할 때 상대방에 정상적인 수준을 초과해서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해서는 안된다. 만약 전담은행으로 선정되는 등 무형의 대가를 받기 위해 펀드 출자를 단행했다면 이는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했다고 해석될 여지도 있는 셈이다.
한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 이용자에 과도한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해서는 안되는 조항이 있지만 사실상 처벌 사례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라면서도 “다만 원칙적으론 전담은행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특정 분야의 펀드 출자를 약속했다면 간접적인 이익이 제공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