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전문성 인정해 예외로 두는 경우 많았지만
연초 직원 인사에선 5년이상은 이동하라는 지침
태영 사태 겪어본 직원 없어 실무진들 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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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은행 횡령사건이 연초 은행권 투자금융부 인사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가 터진 이후 전문성이 수반된 대응계획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순환근무 발령이 많아지면서 당장 실무를 담당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29일, 신한은행은 지난 5일, KB국민은행은 9일 순차적으로 직원 인사이동을 실시했다. 금번 인사결과를 종합하면 투자금융(IB) 부문의 인사이동 사례가 눈에 띈다는 의견이다. 신한은행은 자본시장부문에 GIB그룹을 두고 부동산금융부, 프로젝트금융부, 투자금융부 등을 포함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CIB고객그룹 산하에 구조화금융, 인프라금융, 투자금융본부가 있다. 우리은행 역시 기업투자금융부문 아래 CIB그룹을 두고 투자금융과 프로젝트금융 등 업무를 맡기고 있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에서는 5년 이상의 투자금융 직원들이 타 부서로 이동한 사례가 많아졌다는 후문이다. 과거에도 5년이 지나면 인사이동 대상자에 오르긴 했었지만 예외를 두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나 회계법인을 비롯한 외부 경력직인 경우에는 채용 당시부터 전문성을 인정받은 만큼 투자금융부에 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금번 인사에서 10년 이상의 부장급 인사는 물론, 외부 경력직 직원도 영업점으로 발령난 사례가 있어 적잖은 충격을 안게 됐다는 후문이다. 전문직군 등 예외없이 5년 이상의 투자금융부 직원은 타 부서로 이동한 사례가 대다수다.
작년 경남은행 투자금융부 한 직원이 수년에 걸쳐 여러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장에서 총 3000억원가량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은행권 전반에 걸쳐 순환보직 사례가 발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성이 강조되는 투자금융부에서 해당 직원이 15년을 장기로 있었는데 스스로가 근무 기간이나 보직 순환 여부를 확인하는 자리라 감시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금감원) 등 당국에서는 투자금융부 내 순환보직 등을 담은 은행 내부통제 혁신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문제는 대부분의 은행권 IB부서에는 부동산이나 인프라 부서가 포함되어 있는데, 해당 부서에서 관리하는 사업장들중 태영건설이 시공사나 시행사로 참여하는 곳들이 많다는 점이다. 신한은행은 구로지식산업센터 개발사업, 김포풍무역세권 도시개발사업, 군포복합시설 개발사업 등을 관리 중이고 국민은행 역시 상봉동 청년주택 개발사업, 대전하수처리장 등 여러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다. 사업장에 참여한 시공사가 워크아웃 기로에 놓이게 되면서 향후 시공사 교체, 기한이익상실(EOD) 선언 여부 등 관리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막상 워크아웃 이후의 절차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언이다. 가장 최근 산업은행 주도로 건설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사례는 지난 2009년 옛 금호아시아나그룹 산하 금호건설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바꿔 말하면 해당 부서에 10년은 있었어야 건설사 워크아웃 사례에 대한 이해도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더욱이 그 사이 구조조정 환경은 변화했다. 워크아웃 근거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2016년 개정을 거치며 적용 대상은 기존 ‘금융기관’에서 ‘모든 금융 채권자’로 바뀌었다. 이해관계자들이 이전보다 많아지며 복잡한 셈법을 거쳐야 하지만, 당장 워크아웃 절차부터 스터디해야 할 실무진들이 산적해 있다보니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다는 전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얼마전 산업은행에서 주최하는 대주단 회의에 참여해 시중은행을 비롯해 채권단들이 한 자리에 모여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라며 “실무진들이 회의에 참여했는데 워크아웃 이후 절차를 이해한 사람은 회의에 참여한 인원들 중 10%도 채 안되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투자금융부는 전문성이 수반되는 부서인데, 순환근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보다는이동을 통해 드러나는 단점이 더 많다는 의견이 나온다. 투자금융부는 기본적으로 딜 종결까지 호흡이 긴 프로젝트가 많아 2~3년 만에 부서를 이동해서 당장 적응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지방은행과 달리 시중은행은 딜을 따오는 프론트, 관리하는 미들, 자금을 집행하는 백오피스로 나뉘어 있어 횡령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부동산 PF나 인프라 딜(거래)의 경우 호흡이 굉장히 길다. 특히 인프라의 경우 정부에서 토지를 보유하게 되어 토지에 대한 대출 이자 부담이 없다보니 빠르게 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라며 “그러다 보니 한 사업의 엑시트(투자금 회수)까지 길면 15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한 사이클을 경험한 사람이 적다보니 실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