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했던 한미그룹 후계자 구도 마침표…장녀 우위
장남 임종윤 회장 반발하며 경영권 분쟁 가능성 점화
지분 확보 나설까…한미사이언스 주가는 고공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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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기업 OCI그룹과 신약 개발 기업 한미약품그룹이 지분 스와프를 통해 동맹을 맺은 가운데 한미약품 창업회장의 장남인 임종윤 사장이 반발하고 있다. 기업 간 통합을 두고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앞서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은 지분 스와프를 통한 그룹 통합을 발표했다. 지주사인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약 27%를 7700억원에 인수한다. 송영숙 회장(故 임성기 회장 부인)은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장녀 임주현 사장은 지분 전부를 현물출자하는 대가로 OCI홀딩스(한미-OCI홀딩스 통합지주) 지분을 확보한다. 이렇게 임 사장이 보유하는 한미-OCI홀딩스 지분은 10.4%다. 상호간의 지분 맞교환을 통해 동맹을 맺은 셈이다.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 이후 후계 구도가 모호했던 한미사이언스는 OCI그룹과의 결합으로 결론이 났다. 창업주의 삼남매 중 누가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을지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장녀 임주현 사장이 OCI그룹과 손을 잡으며 사실상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장남 임종윤 사장이 한미사이언스 지분 11%대, 차남 임종훈 사장이 10%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미-OCI홀딩스가 취득한 지분 27%에 비할 바는 아니다.
5000억원이 넘는 상속세 납부 문제도 해결됐다. 임성기 회장 별세 이후 관련업계에선 오너일가의 상속세 부담으로 인한 한미사이언스 매각 가능성마저 거론됐다.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은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를 우군으로 들이려고도 했다. 다만, 라데팡스에 투자하기로 한 새마을금고가 뱅크런 등으로 투자를 철회하면서 상황이 어려워졌고 대안으로 IMM인베스트먼트와 KDB인베스트먼트와 손 잡는 일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병은 OCI그룹의 손익에도 부합하는 일이었다. OCI그룹은 지난 2022년 부광약품을 인수하며 일찍이 새로운 먹거리를 모색해왔다. OCI그룹의 주력사업인 신재생에너지와 화학·소재사업은 중국의 물량공세에 밀려 영업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이우현 OCI그룹 회장이 신성장동력을 고민한지는 6년이 됐다고 알려진다. 제약업계 1세대로 국내 굴지의 제약사인 한미약품그룹 인수는 OCI그룹 입장에서도 반길만한 사안인 셈이다.
장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미래전략 사장이 두 기업의 동맹에 반발하고 나서면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임종윤 사장은 경영권 확보를 위해 국내외 기관들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장녀인 임주현 사장이 주도한 이번 합병에서 배제되며 후계자 구도에서 밀려나자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앞서 임종윤 사장은 개인 회사인 '코리그룹'의 X(옛 트위터)에 "한미 측이나 가족으로부터 어떤 형태의 고지나 정보·자료도 전달 받은 적이 없다"며 "현 상황에 대해 신중하고 종합적으로 파악한 후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임종윤 사장이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다면 주요 주주인 차남 임종훈 사장,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지지가 필요하다. 임종훈 사장과 신동국 회장은 각각 10.56%, 11.5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임종윤 사장이 두 사람과 연대하면 지분율이 31.99%로 한미-OCI홀딩스 보유 지분을 넘어선다.
차남인 임종훈 사장 역시 이번 거래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지며 임종윤 사장과 연대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창업주의 고교 후배이자 한미사이언스 상장 초기 지분을 확보한 신동국 회장 지분의 향방이 관건이란 평가가 나온다.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경영권 분쟁 향방이 좌우될 수 있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고조되며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급등하고 있다. 금일 오후 3시19분 기준,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4만3700원으로 전 거래일 대비 14.06% 올랐다. 임종윤 사장이 경영권 확보를 위해 장내 지분 매입에 나선다면 주가는 추가로 오를 수 있다. 이런 기대감에 주가가 상승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OCI홀딩스는 임주현 회장의 지분취득을 위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 이슈로 주가가 하락 중이다.
임종윤 사장과 연대해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 사모펀드가 나타날지 업계 이목이 쏠린다. 앞서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는 한국앤컴퍼니 경영권을 노린 공개매수를 시도한 바 있다. 오너 일가를 상대로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일은 향후 사모펀드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앞서 MBK가 한국타이어 경영권을 노린 공개매수를 벌이긴 했지만 사모펀드 입장에선 오너 일가와 척을 지는 일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들이 주로 오너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판을 신경쓰는 셈"이라며 "어떤 참여 유인이 있을지 잘 살펴 봐야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