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아웃 펀드 주춤…인프라 투자자에 기대 분위기
시장 지배력 늘리며 실적 개선…물류 인프라 강점
박한 이익률에 높은 몸값, 창업주 존재는 매각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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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블랙스톤의 지오영 매각은 올해 손꼽히는 사모펀드(PEF) 회수 거래로 꼽힌다. 작년 물밑에서 원매자를 찾았는데 올해부터 본격적인 매각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매도자는 의약품 도매 플랫폼의 ‘인프라’로써 성격을 강조하는데 이 전략이 원매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2조원대로 거론되는 몸값, 창업주의 퇴진 여부도 매각 성패를 가를 변수로 꼽힌다.
지오영은 조선혜 회장과 이희구 회장이 2002년 설립한 의약품 도매업체다. 회사는 2009년 골드만삭스PIA로부터 400억원을 유치했고, 이 투자를 이끈 인사들이 설립한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2013년 지오영 경영권 지분을 확보했다. 2019년 블랙스톤이 1조원 이상을 들여 지오영 경영권을 인수했다.
블랙스톤은 대성산업가스, 휴젤 등 대형 거래에 관심을 보였지만 고배를 마셨다. 첫 투자인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은 2021년 상장에 실패했다. 현재로선 지오영 매각이 가장 확실하게 성과를 가져다줄 카드로 꼽힌다. 모건스탠리가 매각 주관을 맡았는데, 작년 실적을 확인한 후 매각 절차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오영은 그간 주요 사모펀드(PEF)의 투자를 유치하고, 그 자금으로 영세 의약품 유통업체를 인수하는 전략(Bolt on)을 폈다. 이를 통해 국내 1위 업체로서 입지를 공고히 했고 실적도 매년 개선됐다. 2019년 2조원 미만이던 매출(개별 기준)은 2022년 3조원 가까이 육박했고, 같은 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422억원에서 644억원으로 늘었다.
지오영의 실적 개선세가 확실한 만큼 매도자가 2조원 이상의 몸값을 바랄 것이란 예상이 있다. 다만 2022년 말부터 자본시장이 침체하며 수조원대 거래가 진행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이 영세 업체들이 있는 시장의 1위 사업자에 관심을 갖기는 부담스럽다. 경영권 인수(Buy out) 전략을 펴는 사모펀드(PEF)들도 높은 기대수익률과 고금리 환경을 감안하면 선뜻 움직이기 어렵다.
블랙스톤이 지오영 매각을 단순한 경영권 거래보다는 인프라 성격 거래로 풀어갈 것이란 예상도 있다. 현재 자본시장 환경 상 일반 PEF보다는 인프라 펀드가 투자하기에 용이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글로벌 PEF가 일찌감치 전략적투자자(SI)와 금융사들을 접촉하며 인수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데, 블랙스톤은 일부 인프라펀드에도 인수 의향을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인프라 전문 투자사는 “SK쉴더스 매각이 인프라성 거래로 성사된 후 많은 거래가 그와 비슷한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오영 매각자 측에서 인수 의향을 물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오영의 주요 사업 모델은 의약품을 유통하고 이 과정에서 수수료를 취하는 것이다. 사업은 안정적이지만 약값은 정부 통제 아래에 있고 중개 수수료율은 박하다 보니 매력도가 높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안정성만 보고 과한 거래 배수를 적용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지오영이 그 동안 펼친 사업 확장 전략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할 시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지방의 여러 영세 유통업체를 사들이는 자체로 매출이나 이익 증가를 기대할 만하다. 설 자리가 줄어드는 영세업체는 매각을 희망하고, 확장을 원하는 지오영은 인수를 바라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맞다. 영업이익률 자체는 낮아도 실적 성장세는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1등 사업자로서 제약사와 병원과도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할 수 있다.
지오영은 단순 중개업자가 아니라 의약품 도매 플랫폼으로써 성격도 갖춰가고 있다. 수도권 최대 의약품 물류센터를 통해 최적의 의약품 공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반 범용 의약품이야 쌓아두고 팔면 되지만, 불규칙하게 소비되는 특수 의약품은 얼마나 가까이에 물품을 댈 인프라가 갖춰져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는 빅데이터에 따라 물품을 공급하는 ‘쿠팡’의 사업 모델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지역 약국들은 기존 거래 관계에 있는 유통업체와 거래를 해왔지만 취급 물품이나 공급의 적시성 면에선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이런 업체들이 점차 지오영 체제로 흡수된다면 지오영의 매출이나 이익 규모는 자연스레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원매자가 이런 미래 전망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느냐는 별개다. 좋은 회사라도 대규모 자금을 쓸 여력이 있는 곳은 드물고, 기대대로 점유율을 늘려갈 수 있을지도 확신하긴 어렵다. 시장 지배력이 강해질수록 시장의 저항이 높아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창업주 조선혜 회장의 거취도 관심사다. 지오영의 사업 면에선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지만 투자자 입장에선 불편한 존재일 수 있다. PEF에 경영권이 넘어간 지 오랜데, 오히려 창업주가 사업 파트너를 교체한 것이란 시선이 있을 정도다. 블랙스톤이 조 회장과 입장이 조율됐으니 지오영 매각을 추진할 것이란 예상이 있지만, 어느 경우에도 조 회장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오영 창업자는 또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고 보유 지분이 사라지더라도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며 “블랙스톤이 창업주와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뒀냐에 따라 지오영 매각 성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