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R, 작년 TY홀딩스 투자하며 에코비트 지분 확보
조단위 지분 담보로 4천억 유치했지만 위기 지속
위기 초 투자한 KKR, 태영그룹 전체 아우를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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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투자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기업은 에코비트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후속 조치로 매각이 진행될 예정으로 자문사와 잠재 투자자들의 이목이 모이고 있다. 에코비트의 전신은 태영(T)과 SK그룹(SK)의 이름을 딴 TSK코퍼레이션이다. 수년 전 한 글로벌 사모펀드(PEF)가 SK그룹 측 지분 일부를 사려했으나 내부 승인을 얻지 못해 실패했다.
이후 태영그룹의 파트너로 부상한 곳이 KKR이다. KKR은 2020년 TSK코퍼레이션 소액주주 지분을 사들이며 태영그룹과 처음 마주했다. 이듬해 TSK코퍼레이션은 KKR의 이젤에스피브이(ESG·ESG청원)와 합병했다. 합병법인 에코비트 지분을 태영그룹과 KKR이 반씩 갖고 공동 지배하는 구조가 됐다.
태생적으로 오너 지배체제와 거리가 있는 글로벌 PEF가 이름값이 크지 않은 그룹에 투자한 배경에 관심이 모였다. 다만 당시는 전세계적으로 환경기업이 부상하던 때라 PEF가 투자하고 몸집을 불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태영그룹으로서도 세계적인 투자자와 손을 잡고 이름을 알리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태영그룹과 KKR의 동행은 작년에 다시 주목받았다. 태영그룹 지주사 TY홀딩스는 태영건설 유동성 위기가 심화하자 작년 1월 KKR에 4000억원 규모 사모사채를 발행했고, 이 자금을 태영건설에 지원했다. 사채 이자율이 13%에 달했지만 당시 위축된 시장 분위기에선 그나마도 감지덕지였다. 펀드가 아닌 자기자본투자(PI)를 집행한 KKR을 ‘우군’으로 볼 만했다.
태영건설의 자금 위기는 이어졌고 결국 워크아웃으로 갔다. KKR은 사모사채를 인수하며 TY홀딩스 보유 에코비트 지분 50% 담보로 받았다. 4000억원과 이자를 받기 위한 안전장치로 연간 2000억원의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의 완전한 경영권을 저당잡은 셈이다. 에코비트 매각가는 2조원 이상으로 예상되고, 태영그룹은 3조원 수준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그룹의 곤궁한 상황과 그간의 신뢰관계를 감안하더라도 KKR에 크게 기우는 약탈적인 투자 조건이 아니냐는 지적이 따랐다. 세부적인 합의 사항을 따져봐야겠지만 표면적으로는 태영그룹이 돈을 갚지 못해도 KKR로선 나쁠 것이 없어 보인다. 담보로 돈을 빌리느니 차라리 에코비트 경영권을 팔았다면 더 큰 돈을 만졌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태영그룹은 지난달 TY홀딩스의 자회사 태영인더스트리와 평택싸이로를 총 3000억원을 받고 팔았다. 그 전에 일부 투자자가 태영인더스트리 지분을 사줄 수 있다고 제안해 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태영그룹의 선택은 KKR이었다. 지난달 말 워크아웃 신청 전 거래를 끝내야 한다며 서둘러 돈을 받았다. 다만 이 자금은 태영건설 지원에 온전히 쓰이지 않으며 채권단의 맹공을 받았고, 태영그룹은 다시 원상복구해야 했다.
태영그룹은 태영건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1조2000억원 규모 선제적 자구 노력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태영건설은 워크아웃으로 갔고 태영그룹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계열사 몇을 이미 팔았고, 알짜회사 에코비트 경영권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부족할 경우’ TY홀딩스와 SBS 주식도 담보로 내놓겠다고 했다. 그룹이 송두리째 흔들릴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태영그룹은 역량이 부족했거나 순진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설마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겠느냐 하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지만, 부동산발 위기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측했더라도 간언하기 어려운 분위기 알려졌다. 오너일가가 KKR과 사이좋게 지내며 일을 풀어가겠다는데 임원이나 실무진이 위험 신호를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태영그룹 오너 입장에선 KKR의 조건을 크게 걱정하지 않거나 꼼꼼하게 살피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며 “그룹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조건이라면 주변에서 말려야 하는데 태영그룹 내부엔 그런 사람이 없고, 있어도 오너에게 직언할 수도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반면 KKR은 가장 큰 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PEF라면 평판 위험 때문에라도 망설였을 거래를 본사 자금을 써가며 단행했다. 작년 말 태영그룹 관련 투자를 이끈 KKR 한국 인프라부문 인사들이 승진한 점에서도 ‘잘한 투자’라는 내부 인식이 드러난다. KKR이 선관주의에 따랐겠지만 건설 전문가인 태영그룹보다 금융 전문가인 KKR이 태영그룹의 위험도를 더 높게 봤을 가능성이 크다. ‘하버드 나온 고리대금업자’로서 실력을 여실히 보였다는 것이다.
KKR은 태영그룹과 함께 에코비트를 매각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워크아웃에서는 권리 행사 시 채권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팔아야 한다면 함께 파는 편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시장에선 KKR이 다른 펀드를 활용해 에코비트를 사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KKR이 나선다면 다른 경쟁자들이 참여하기 부담스럽다. SBS 등 다른 잠재 매물도 KKR이 사실상의 우선권을 가진 셈이다. 위기의 시작점에 단행한 KKR의 투자가 태영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