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재판은 '국정농단 사건'과 '불법합병 사건'
뇌물혐의로 구속됐으나 형기 만료…불법합병 사건은 향후 수년간 공방예고
물산ㆍ제일모직 합병 여파가 아직까지 지속…모두가 피해자?
분식회계 판단 행정법원에도 계류…여전히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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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6년 전 검찰의 삼성그룹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삼성 불법합병ㆍ회계부정 사건'이 조만간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재판기간 3년2개월ㆍ공판 106회ㆍ검찰 수사기록 19만 페이지, 그리고 수백명의 증인목록이란 기록을 남겼다.
이번 재판 결과는 "이재용 회장의 삼성그룹 승계가 불법적으로 자행됐는가"에 대한 사법부의 공식적인 판단을 의미한다. 이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ㆍ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ㆍ김종중 전 미래전략실1팀장(사장) 등 삼성 전현직 최고임원들의 운명도 결정된다. 복잡하게 얽힌 재판의 전후사정과 이슈, 논란거리와 함의 등을 시리즈 기사로 정리한다.
문재인 정부(2017.5~2022.5) 초기부터 시작된 삼성 이재용 회장을 둘러싼 재판은 2가지였다.
하나는 '국정농단 사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삼성과 이재용 회장이 "말 3마리를 정유라에게 제공하고, 동계스포츠 센터 지원금 등을 뇌물로 제공했다"는 혐의다. "대가성을 바란 뇌물이냐, 아니냐"를 두고 법적공방이 오갔다.
사법부는 '뇌물'이라고 결론을 냈다. 1심부터 3심까지 이재용 회장은 구속과 석방을 반복했다. ▲1심, 징역5년으로 구속 (2017년 8월25일) ▲항소심, 징역2년6개월ㆍ집행유예4년으로 석방 (2018년 2월5일) ▲상고심ㆍ파기환송심, 징역2년6개월로 다시 구속 (2021년 1월18일).
파기환송심에서 법정구속된 이재용 회장은 7개월 뒤인 2021년 8월에 가석방됐다. 이듬해인 2022년 7월 형기가 만료됐고 8월에는 광복절 특사로 복권까지 완료됐다. 최지성 전 부회장ㆍ장충기 전 사장도 2022년 3월 가석방 됐다. '이재용 회장 재판'으로 시중에 알려진 내용 대부분은 이 재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ㆍ한동훈 검사장 시절'에 주로 진행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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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가 이번에 1심이 나올 '삼성 불법합병ㆍ회계부정 사건'이다.
사안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고 관계자들도 많다. 주된 혐의는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이 불법적으로 자행됐다, 이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이용했다" "삼성이 조직적으로 부정거래ㆍ시세조종ㆍ거짓공시ㆍ회계분식ㆍ위증을 자행했다" 등이다.
2018년 12월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 사업지원TF(옛 미래전략실)를 압수수색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이복현 부장검사 (현 금융감독원장)가 이끌던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가 조사를 주도했다. 기소된 이들은 이재용 회장과 최지성ㆍ장충기ㆍ최치훈ㆍ김신 전 대표 등 삼성 핵심 관련자 11명이었다. 삼정회계법인 김교태 대표ㆍ변영훈 부대표ㆍ심정훈 상무도 같이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감사법인이었던 2012년~2015년 삼정회계법인(삼정KPMG)이 분식회계에 가담했다는 혐의다.
삼성은 김앤장(김유진ㆍ김현보ㆍ안정호 등)ㆍ태평양(송우철ㆍ권순익ㆍ김일현 등)ㆍ화우 등 20명에 가까운 대형 로펌 판사 출신 변호사들을 법정 대리인을 내세웠다.
이후 5년이 넘도록 공판만 이어졌고 아무 결론을 못냈다. 겨우 작년 11월 17일 결심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이재용 회장 징역5년ㆍ벌금5억원 ▲최지성 전 부회장 징역4년6개월ㆍ벌금5억원 ▲장충기 전 사장 징역3년ㆍ벌금1억원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 대표사장 징역4년 ▲최치훈ㆍ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ㆍ이영호 최고재무책임자 등 징역4년ㆍ벌금3억원을 구형했다.
사건의 재구성1 : 삼성물산 주주들 반대를 무릅쓰고 단행된 제일모직과의 합병
사건의 시작은 2015년 7월의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이다. 거의 10년전 일이지만 여전히 여파를 미치고 있다.
당시에도 삼성물산은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해왔다. 반면 제일모직은 '삼성에버랜드'와 '패션사업부' 중심의 계열사에 불과했다. 주주들 면면을 봐도 삼성물산은 주로 기관투자가들이 많았지만, 제일모직은 이재용 회장 일가들이 주요 주주였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면 이재용 회장 등이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 경영권을 온전히 승계하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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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양사 합병비율을 <제일모직 : 삼성물산>=<1 : 0.35>로 제시했다. 제일모직 주식 값어치가 1이라면, 삼성물산 주식 값어치는 불과 0.35라는 의미다. 당시 양사 주가에 기반해 산출된 수치였지만 삼성물산 주주인 기관들이 대거 반발했다.
그도 그럴것이, 합병 직전 해에 삼성물산 주가는 7만원대였지만 단 1년만에 5만원대로 떨어졌다. 수주부진ㆍ실적부진ㆍ안전사고 등 오만가지 악재가 한꺼번에 터졌다. 반대로 제일모직은 1년전 5만원대였던 주가고 16만원까지 3배로 올랐다.
이 시기에 양사를 합병하면 제일모직 최대주주인 이재용 회장의 이익이 최대화되는 구조가 가능했다. 반대로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주들로선 최악의 합병시기였다. (관련기사 ; 5개월만에 뒤집힌 삼성물산·제일모직 기업가치…불편한 합병비율)
ISSㆍ글라스루이스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삼성물산 주주들은 합병에 반대하라"고 권고했다. 외국자본으로 삼성물산에 투자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소송까지 불사하며 합병에 반대했다. 삼성은 엘리엇을 '동물의 사체를 뜯어먹는 대머리 독수리' 등 유대인의 악덕자본으로 묘사하고 "삼성그룹을 도와달라" 여론전을 펼쳤다. (관련기사 : 삼성은 '강한 주주'에겐 돈을 준다?…엘리엇 비난하다 '유대인 차별'에 발 빼던 삼성)
'국민연금'과 'KCC'의 도움으로 합병은 성사됐다. 박근혜 정부 산하의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주였지만 합병에 찬성했다. KCC는 제일모직 자사주를 대규모로 인수, 삼성그룹 백기사로 나서줬다.
이후 수년간 후폭풍이 이어졌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에 연루된 이들은 이 사안으로 구속됐다. 소관부처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ㆍ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징역 2년6개월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엘리엇은 삼성에서 '비밀 합의금'을 받았다. 합병 이듬해인 2016년 삼성은 엘리엇이 소송을 취하하는 대가로 합의금을 주기로 했고 이후 손해추정액 724억원을 지급했다. 비공개로 진행됐으나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공개됐다. (삼성은 이를 "비공개 조건으로 약정이 맺어진 것이지 '비밀약정'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별도로 엘리엇은 "한국 정부 입김이 작용하는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때문에 우리가 손해를 봤다"로 국제투자분쟁(ISDS)를 제기했고, 사실상 승소했다. 우리 정부는 국민세금으로 엘리엇에 1300억원을 물어줘야 한다.
KCC는 2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삼성물산에 투자, 백기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이익은 보지 못했다. 최초 투자시기 (2012년)부터 10년이 지나도록 삼성물산 주가는 거의 제자리 혹은 더 떨어졌다.(관련기사: 실적부진 속 美 모멘티브 인수나선 KCC, 결국 삼성물산 지분 매각할까)
사건의 재구성2 :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법부 판단, 6년째 제자리
제일모직이 순식간에 3배가 값어치가 오르면서 이재용 회장에게 유리한 합병이 가능했다. 비결은 '삼성바이로직스-바이오에피스'로 꼽힌다. 이재용 회장에게 징역5년을 구형한 이번 재판의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의 바이오산업을 맡는 형태로 2011년 설립됐다. 최대주주는 이재용 회장이 1대주주였던 제일모직으로, 43% 지분을 보유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아래에 미국 '바이오젠'와 합작해서 2012년 세운 신약개발회사가 '삼성바이오에피스'.
당초 삼성바이오에피스 1대주주는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지분 91.2%를 보유했다. 하지만 수년뒤 삼성이 갑자기 "미국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사올 콜옵션(Call Option) 권리가 있고 이로써 바이오젠이 바이오에피스 49.9% 주주가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 '콜옵션 조항' 단 하나로, 회계적인 기법을 동원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수조원대 회사로 값어치가 급등했다. (관련기사 :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을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
삼성은 바이오에피스가 바이오로직스의 '종속기업'(Subsidiary)이 아닌 '관계기업'(Affiliate)이라고 주장, 지분법 평가를 적용했다. 또 현금흐름할인모형(DCF)을 통해 수년째 적자였던 삼성바이오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시켰다. 적자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유가증권 상장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아래서 "적자여도 상장할 수 있다"라는 새로운 상장조항이 도입됐다. 이로써 삼성바이오의 성공적인 상장, 그리고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의 값어치 급등이 이뤄졌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이 같은 회계처리를 '분식회계'라고 판단, 2차례 시정조치를 내렸다. 2018년 7월12일에는 삼성바이오에 '감사인 지정 3년ㆍ담당임원 해임권고ㆍ회사 대표이사 검찰고발'을, 다시 4개월 뒤인 11월 14일에는 '과징금 80억원ㆍ재무체표 재작성' 등이 추가로 담긴 2차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삼성이 이런 증선위 제재를 '모두 취소해달라'고 가처분신청을 내고, 동시에 서울행정법원에 본안소송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증선위의 1차ㆍ2차 제재를 모두 '효력정지'시키고 삼성그룹의 편을 들어줬다. "증선위의 조치가 적법한지는 본안소송에서 정식 판단이 나온 것도 아니다"며 "조단위 분식회계를 했다고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장부에 기입하거나 대표이사를 해임해서는 안된다"라는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 점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분식회계 조치에 대해 삼성그룹이 증선위를 이겼다"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분식회계냐, 아니냐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중요한데, 법원은 이후 6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론을 내지 않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김태한 대표'가 원고,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피고인 서울행정법원 3부 본안소송은 "증선위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판단해 내린 제제조치가 잘못됐느냐'를 따진다. 이를 판단하려면 결국 분식회계냐 아니냐를 판단해야 한다.
이 행정법원 소송은 이번 이재용 회장 삼성불법합병 사건보다도 심리가 먼저 진행됐다. 2019년5월22일부터 변론이 시작됐다.
이후 3달에 1번, 짧으면 1달에 1번으로 현재까지 30회가 넘는 변론을 거쳤지만 1심 결과가 언제나올지 알려지지 않았다. 마지막 변론기일은 작년 12월30일, 다음 변론기일은 돌아오는 4월3일로 잡혀있다. 이런 상태에서 이재용 회장 재판에 대한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이 나올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서울중앙지법 1심에 따라 행정법원 판결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