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롯데케미칼 부정적 전망 쏟아져
업황 악화 장기화 전망이 지배적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 작업도 쉽지 않아
신동빈 그 자체였던 케미칼이 발목 잡아
롯데 3세 경영 때 어떤 역할할 지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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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이 연초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내내 롯데건설로 시달렸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뿐, 실상 더 큰 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바로 그룹의 가장 큰 축인 롯데케미칼에서다. 앞으로도 들어갈 돈은 많은데 4분기 적자전환이 예상될 정도로 들어오는 돈은 줄고 연초부터 자금 조달 계획은 뒤틀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롯데케미칼이 그룹의 가장 약한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롯데건설은 한 때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계열사들의 직간접적인 지원으로 모자라 메리츠금융의 펀드를 통해 사실상의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했다. 그랬던 롯데건설이 한 시름 놓게 됐다. 회사가 조성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관련 펀드 조성에 신한은행, KB국민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참여하면서다. 그럼 이제 롯데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종결된 걸까.
더 큰 게 오고 있다. 그룹 두 축 중 하나이자 사실상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롯데케미칼이다. 지난해 6월 신용등급이 AA+에서 AA로 떨어지더니 연초부턴 부정적인 리포트들이 쏟아지고 있다. 증권가에선 롯데케미칼이 2년 연속 적자가 유력해보인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 배경으로 매출 비중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기초소재 부문에서 중국발 공급과잉 현상이 개선되지 않은데다 에틸렌 스프레드도 손익 분기점을 밑돌고 있는 점을 꼽았다.
문제는 이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구조적으로 더 악화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 내 기초소재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이 100% 육박하며 주력사업인 기초소재 부문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롯데케미칼도 손을 놓은 건 아니다. 사업구조 재편에 나섰다. 배터리 소재, 수소, 친환경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기초소재 부문은 고부가가치 친환경 제품 생산 비중을 높여 중국 제품과의 차별화를 노린다는 계획이었다. 계획대로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배터리 사업의 자회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와 함께 양극박, 동박, 전해액 유기용매, 분리막 소재 등 배터리 핵심 소재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미국·유럽 등 주요 시장을 선점해 경쟁력을 키울 방침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지난 2022년 지분 53.3%(경영권 포함)를 총 2조7000억원에 매입한 일진머티리얼즈다. 롯데케미칼은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조원이 넘는 유상증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마침 그때 롯데건설 위기가 불거지면서 유동성 압박이 양쪽에서 가해지며 곤란을 겪었다.
이렇게 힘들게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전망이 밝지 않다. 전방 산업인 전기차 수요 둔화로 업계 전체의 불황이 예고돼 배터리 소재 신사업이 언제 궤도에 오를지 낙관적으로만 지켜볼 수 없다. 앞으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에 들어갈 해외 공장 투자 등 CAPEX도 만만치 않아 인고의 시간은 더 길어질 것 같다. 수소 사업도 당장 수익성과는 거리가 멀다. 역시나 언젠가 시장이 열리겠지만 그 언젠가를 장담할 수 없다.
당장은 고도화전략을 펴려는 기초소재 밖에 답이 없다. 저수익 사업 정리를 위해 지난해 중국 내 범용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모두 매각했다. 올해는 파키스탄 소재 고순도테레프탈산(TPA) 자회사를 매각해 2000억원가량을 확보하려고 했는데 이것이 무산됐다. 현지 상황 때문이라는데 이를 이유로 기업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돈도 돈이지만 포트폴리오 재조정 전략에 일단 브레이크가 걸린 셈이다. 기초소재 부문 전체적으로는 업황이 반등하려면 큰 폭의 유가 하락이 필요한데 단기간엔 어려워 보인다.
조달 계획도 꼬였다. 이달 중 최대 4000억원 규모의 공모채 발행을 계획했지만 시장 반응이 좋지 않아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 2021년말 3조7000억원 정도였던 롯데케미칼의 총차입금은 2023년 9월말 기준으로는 9조6000억원 이상으로 뛰었다. 차입금이 계속 늘어나면서 롯데케미칼의 자금 조달 스케줄은 상당히 중요해졌다. 실적 부진에 여전한 계열사 롯데건설의 지원 부담, 거기에 차입금 부담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들이 나오면서 롯데케미칼은 투자기피처가 됐다. 고난의 시작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롯데케미칼은 신동빈 회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신 회장이 한국에서 처음 맡았던 기업이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이다. 이후 잇따른 인수합병(M&A)으로 회사의 외형을 키웠고 2010년엔 말레이시아 화학기업 타이탄케미칼을 인수했다. 당시 인수가는 1조5000억원이다. 인수 이후 초호황기를 누리며 인수가액에 준하는 금액을 순이익으로 빨리 뽑아내면서 신 회장의 최고 업적 중 하나가 됐다. 이제 롯데그룹은 껌, 과자를 팔던 회사에서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 중화학 기업이 됐다는 '용비어천가'가 나올 정도였다. 그룹 내에서도 황각규, 임병연 등 서울대학교 화학과 출신들이 승승장구했다. 롯데케미칼의 성과는 차후 있었던 롯데 형제의 난에서 신동빈 회장이 승기를 쥘 수 있게 된 결정적 명분이 되기도 했다.
이랬던 롯데케미칼이 이젠 그룹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 건이 돼버렸다. 호황에 취해 업황 변화를 미리 감지하지 못했고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데도 한참 뒤쳐졌다는 평가다. 한 때는 자랑거리였던 타이탄도 기업가치 하락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롯데그룹의 투자 전략은 여전히 그 좋았던 레버리지 시대에 머물러 있고 이미 다가온 친환경 디레버리징 트렌드에 편승하지 못한지 한참이라고 지적한다.
롯데 3세 시대엔 롯데케미칼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가 관건이다. 롯데케미칼이 아버지를 왕좌에 앉히는 혁혁한 공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들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의 발판이 될지는 미지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체질 변화를 하게 되면 또 한 번의 기회를 맞게 되겠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처리하기도 쉽지 않은 골칫덩어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