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도 바이오 투자처 모색중
비용 부담되는 R&D, 결과 보장도 어려워
M&A, 높은 검토 난이도에 사업 시너지 불확실
"여전히 고금리…바이오 구조적 성장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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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기업에 이어 중견기업들까지 제약·바이오·헬스케어 분야 투자를 늘리고 있다. 다수의 기업이 제약·바이오 관련 계열사의 유무와 별개로 이미 바이오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꼽고 관련 인수합병(M&A)을 검토 중이다. 이종산업간 '합종연횡'하는 모습도 보인다. 다만, 투자 검토 과정뿐 아니라 투자 성과를 내기까지도 난항이 예상된다.
성장세가 꺾인 이차전지 테마를 제외하면 AI·로봇 등 일부 테마만 투자 매력도가 있다는 평가다. 투자 섹터 공백을 바이오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바이오를 향한 기업들의 열망은 지난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42회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JPMHC에 참여한 국내 주요 제약사 및 바이오기업은 향후 성장 가능성을 강조했다. JPMHC 메인트랙에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아시아·태평양 세션에 SK바이오팜·롯데바이오로직스·유한양행·카카오헬스케어 등이 참여했다.
제약·바이오업계에 빅딜도 이어졌다. 12일 에너지 기업 OCI그룹과 신약 개발 기업 한미약품그룹은 지분 스와프를 통한 그룹 통합을 발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과 기업 오리온그룹은 제약 기업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의 지분 25.73%를 5485억원에 인수한다고 15일 공시했다.
신성장 동력이 필요한 기업과 자본력이 부족한 제약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제약·바이오 분야를 숙원 사업으로 꼽은 오리온그룹은 지난 2022년 12월 하이센스바이오와 합작 방식으로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한 바 있다. OCI그룹은 지난 2022년 부광약품을 인수하며 일찍이 새로운 먹거리를 모색해왔다.
몇 년간 죽 쑤던 바이오 섹터에 시중 자금이 다시 몰리는 가장 큰 이유로 '금리 인하 기대감'이 꼽힌다. 당국의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도 한몫한다. 특히 바이오 신약 개발 기업(바이오텍)은 기업 특성상 실적보다는 수급에 민감해 공매도의 주 타깃이 돼왔다.
바이오 활황이 시작되던 2019년 이후로 2021년까지 많은 바이오텍은 저금리 환경에서 기업상장(IPO)을 했다. 그러나 금리가 급등하자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청사진을 제시해 돈을 빌렸지만, 금리가 상승하면 차입비용이 증가해 신약개발에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이크 가이토 JP모건 헬스케어 투자 총괄은 JPMHC에서 "최근 수년간 침체했던 제약·바이오 시장이 강력한 M&A 수요를 소화하기 시작했다"며 "올해 금리가 인하되고 시장이 안정되면 사모펀드도 본격적으로 돌아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비만 치료제·항체·약물접합체(ADC)·탈모 치료제 등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통해 기업들이 수익 실현 가능성을 봤다는 평가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염(MASH) 치료제는 신약 승인을 앞두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오는 3월14일까지 미국 마드리갈 파마슈티컬스의 MASH 신약 후보 레스메티롬의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바이오 기술 진입장벽은 높지만 그만큼 수익성도 뛰어나다. 신약 개발 성공률은 극히 희박하며, 신약 개발(임상 단계~허가 승인)에 걸리는 시간은 약 10년이다.
다만,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고 실적을 내기까지 쉽지 않을 거란 분석이다.
일찌감치 그룹 차원에서 바이오 육성에 공을 들였던 삼성그룹마저 M&A를 검토했지만 아직 괄목할 성과는 없다. 삼성전자는 바이오산업을 신수종사업(2010년), 4대 미래성장 사업(2018년)으로 꼽아 힘을 실었다. 2011년과 2012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각각 설립하며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를 통해 바이오시밀러 개발 역량과 생산 능력은 어느 정도 갖췄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블록버스터의 존재감은 다소 아쉬웠다.
현재 삼성은 미국 바이오젠의 바이오의약품 복제약(바이오시밀러) 사업부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바이오젠 사업부 인수를 중요 의제로 챙겼고, 삼성전자 사업지원 TF에서도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삼성 외에 인도 제약사 인타스(Intas) 등 글로벌 기업이 인수전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선 작년 9월 치러진 입찰 과정에서 삼성이 제안한 가격이 경쟁사보다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비(非)바이오 기업일수록 어려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 사업을 운영한 경험이 없어 투자 검토의 난이도가 더 어렵다는 평가다. 실제로 최근 바이오 기업에 투자한 한 기업의 경우 기업 간담회에서 대표가 "피투자 기업의 사업 내용은 자세히 모르지만 좋아보인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코로나 당시 발행한 전환사채(CB) 등의 만기가 대거 돌아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여전히 고금리 상황에서 일부 바이오 기업은 자금을 상환하거나 추가로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기업의 CB 발행액은 2021년 사상 최대 규모인 1조9308억원을 기록했다.
바이오산업은 타 산업 대비 R&D 투자비 비중이 높은 기술집약적 산업이다. 자금이 '수혈'되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바이오산업은 성장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이미 상대적으로 자금이 넉넉한 대기업 계열의 바이오 기업도 안정적 실적을 위해 쉽사리 신약 개발에 나서지 못하고 위탁개발생산(CDMO)으로 몸집을 불리는 상황이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3월 MASH 치료제 신약 승인, 4월 미국암연구학회(AACR), 6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등 외엔 단기간 내 바이오 섹터가 회복할 만한 이벤트가 보이지 않는다"며 "블록버스터 파이프라인을 노리기에는 국내 바이오 기업의 기술이 자본력을 내세운 선진국 기업 대비 부족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