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서 빠져나간 유동성만 2000억…자금 구멍
롯데케미칼도 투자 재검토…이자에 기회비용까지
시중銀 통해 그룹 주춧돌 새로 까는 격…숨통 틀 전망
금융당국 눈총 덕 봤지만 시중銀도 조심스런 분위기
롯데그룹도 마찬가지…협력하되 위험부담 최소화 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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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건설은 시중은행 지원으로 프로젝트 금융(PF) 차환 위험 해소를 앞두고 있다. 구체적인 펀드 조성 논의가 한창이지만 1년 전 메리츠금융그룹과의 투자 협약과 비교하면 조달 지형이 크게 바뀐 모습이다. 펀드에 담길 자산만 놓고 보자면 성사가 쉽지 않은 거래란 평이 여전하지만, 계열 건설사 유동성 위기에 발목이 잡히면 안 된다는 그룹 차원 위기감이 배경에 깔려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롯데건설과 PF 차환용 펀드 조성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큰 틀에선 은행권이 참여 가능한 수준으로 금리를 낮춰 롯데건설 부담을 줄이되 롯데그룹 계열이 위험을 나눠지는 구조가 거론된다. 양측은 이달 중 조율을 마치고 공식 입장을 내놓을 예정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조달 지형이 뒤바뀌었다. 이번 펀드 조성에 참여하는 은행권은 '메리츠금융을 대체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자평하는데, 양자 협력이 이뤄진 배경에 시장 관심이 적지 않다.
가장 먼저 꼽히는 건 롯데건설 차환 위험을 바라보는 그룹 인식 변화다. 롯데건설은 2022년 하반기 시중금리가 치솟으며 그룹 유동성 구멍으로 부상했다. 당시 롯데케미칼과 롯데쇼핑 등 롯데지주 아래 양대 축이 지원에 나섰지만 작년 초 메리츠금융그룹에 12% 수준 수익률을 보장하며 1조5000억원 규모 차환용 펀드를 만들어야 했다. 이후 1년이 지나도 차환 위험은 줄어들지 않고, 더 많은 미착공 PF를 막아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다.
롯데그룹으로선 계열 건설사가 종전보다 더 큰 규모 차환용 펀드를 2금융권 도움으로 막는 것 자체가 부담일 상황이다. 투자 업계에선 메리츠금융이 기존 1조5000억원 규모 펀드를 통해 약 2000억원 안팎의 수익을 남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달리 보면 롯데에서 메리츠로 빠져나간 유동성 규모다. 펀드 구조상 부실에 따른 위험을 그룹 계열사가 모두 부담했음에도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 것이다.
그룹 차원에선 단순히 금융 비용만 따지기 어렵다. 기회 비용도 만만치 않다. 당시 펀드에 가장 많은 자금을 후순위 출자한 곳은 롯데정밀화학인데, 사실상 모회사 롯데케미칼 대신 지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도 롯데정밀화학은 그룹에서 몇 없는 현금 여력을 가진 계열로 통한다. 롯데케미칼이 올 들어 연 3조원 규모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는 상황에 비춰보면 롯데건설을 통해 빠져나간 유동성이 그룹 장기 청사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롯데그룹 출신 한 인사는 "그룹 내부에선 제때 설비투자(CAPEX)에 나서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면 어차피 기업 가치가 오르고 다음도 꾀할 수 있다는 보수적 판단이 우선하는 편"라며 "지주 체제 전환 이후 캐시카우인 롯데케미칼이 그룹 청사진 핵심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롯데건설이 현재 시중은행과 조성하는 펀드는 그룹 차원에선 주춧돌부터 새로 까는 작업으로 비유된다.
시중은행과 펀드를 조성하는 만큼 당장 이자율은 한 자릿수로 내려오게 될 전망이다. 당장 이자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1금융권과 펀드를 조성했다는 것만으로 롯데건설을 포함한 계열 회사채 발행이 숨통을 틀 수 있다. 작년 이후 기관투자가들은 롯데그룹 계열 회사채 발행에 참여할 때 롯데건설 차환 위험 및 계열 지원 부담을 감안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해 왔다.
발행 시장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 계열 회사채 발행과 관련해 기관 영업을 다녀보면 이미 롯데건설 보유 사업장에 대한 리스크를 감안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롯데건설 차환 위험을 조기에 해소하는 게 그룹 차원에선 현금흐름 관리의 출발점이 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롯데그룹은 물론 펀드에 참여하는 시중은행 내부에서도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적지 않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메리츠금융과의 협력 당시 그룹 계열사가 후순위 대출, 이자자금 보충 등 신용보강까지 위험을 모두 떠안는 구조에서도 12% 수준 수익률을 보장해야 했다. 시중은행이 메리츠금융을 대신하기 위해 수익률을 한 자릿수로 낮추자면 그만큼 그룹 계열 지원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시중은행으로선 위험 자산에 발을 담그면서 이에 준하는 수익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외부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금융위원회 등 정부당국 차원 위기감이 크게 작용한 것도 있지만 롯데그룹에 대한 특혜로 비칠 가능성도 최소화해야 한다.
대형 증권사 한 임원은 "메리츠금융이 고금리를 보장받았다는 비난을 받았어도 업의 본질만 따지면 은행권을 찾기 힘든 기업에 자금을 융통해 주는 역할을 해준 셈"이라며 "여전히 우리도 투자심의를 넘기기 어려울 거라 보는 펀드인데, 시중은행들이 발 벗고 나간 상황이 무척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롯데건설을 포함한 롯데그룹 역시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현재 펀드 조성과 관련해선 지난해 지주 차원에서 내려보낸 박현철 롯데건설 부회장과 고정욱 롯데지주 최고재무책임자(CFO) 재무혁신실장이 손발을 맞추는 것으로 전해진다. 1금융권을 통한 펀드 조성에 주력하는 과정에서 그룹 계열사가 떠안아야 할 부실 위험이 늘어날 경우 그룹 내부는 물론 계열 상장사 주주 관리에도 불똥을 튈 수 있다. 시중은행 펀드 참여에 최대한 협조하되 그룹이 너무 많은 위험을 떠안는 구도 역시 피해야 하는 셈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이번 펀드 조성이 마무리되면 당장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작년처럼 하반기 금리 인하 전망이 재차 6개월, 1년 단위로 밀리거나 본 PF로 넘어간 사업장 분양 성적이 기대를 밑돌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펀드 조성을 마무리 짓더라도 그룹 곳간 관리 외 은행권 부실 전이나 특혜 시비 등도 잠재 위험으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