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 줄이려는 하림 vs. 최소한 장치 필요한 정부
주식 전환·배당 제한 등 쟁점…결국 인수체력 문제
해운 동맹·총선·노조 등 '사정변경' 요소도 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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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 HMM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인 하림그룹 간 협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양측은 당초 5주간 주주간계약 내용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뜻을 모으지 못했다. 본입찰 참여 당시부터 여러 쟁점을 두고 힘겨루기가 있었던 만큼 의견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양측은 내달 6일까지 2주간 추가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인수자의 경영권 행사 의지와 정부의 산업정책적 고려가 맞부딪는 상황이다. 하림그룹은 일단 HMM을 인수한 후에는 되도록 간섭을 받지 않길 바라지만, 해양수산부나 해양진흥공사는 유일한 국적 원양선사를 감시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HMM 배당 제한,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 인수자 측 지분 매각 제한 등이 중요 쟁점이다.
하림그룹 측에선 3년간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 유예, 5년 이후 주주간계약 효력 실효 등을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영구채 문제는 한발 물러섰고, 주주간계약 유효기간에 대해서도 뜻을 모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영구채를 시기에 맞춰 주식으로 전환하도록 하되, 5년 이후엔 지분율에 따르면 된다. 그때도 해양진흥공사 등이 주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 주주로서 목소리를 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협상이 지연되는 것은 결국 하림그룹이 HMM을 안정적으로 품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기업이 더 큰 기업을 막대한 차입성 자금을 조달해 인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매각 초기부터 제기된 우려는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충분하게 확보한 자금조달 선택지를 어떻게 조합하느냐만 고민하면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수조원에 이를 차입성 자금 조달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많다고 보긴 어렵다.
인수금융을 2조원만 일으켜도 연 1000억원이 넘는 이자를 감수해야 한다. JKL파트너스가 재무적투자자(FI)로 나서 수천억원을 투자할 예정인데 조달 부담이 적지 않다. 산업은행이나 대형 기관출자자(LP)의 참여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일각에선 수익률 8% 이상과 하림그룹에 대한 매도 권리(Put option)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담도 5년간 쌓이면 수천억원에 달한다. 팬오션 증자 시 하림지주도 힘을 보태 지배력을 유지해야 한다.
하림그룹은 HMM에 쌓인 현금을 해운 불황 대비, 미래 경쟁력 제고 등을 위해 쓰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배당에 욕심을 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매도자가 영구채를 주식으로 바꾸지 않고 경영 간섭을 최소화해야 HMM 배당 시 하림그룹 몫의 파이가 줄어들지 않는다. HMM의 배당 성향을 크게 손대기 어렵다면 다른 믿을 구석이 있어야 한다.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 개발 사업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 해운업계 전문가는 “하림그룹은 HMM 자금을 배당으로 활용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자체 체력만으로 차입금과 FI 자금을 상환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며 “산업은행은 다른 매도자의 입장 때문에 답답하고, 하림그룹은 원하는 것을 얻기 쉽지 않아 협상이 질질 끌리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하림그룹의 의견 조율이 늦어지는 사이 ‘사정변경’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M&A는 시간이 끌릴수록 성사 가능성이 작아지는데, 거래의 기본 전제까지 틀어지면 결과가 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해운업은 올해부터 완연한 하강 국면을 지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해운 항로의 정세 불안이 이어지며 해운 운임이 치솟았고, HMM도 당분간 흑자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 차를 두고 다시 하강 주기 그래프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지만 매도자 입장에선 입맛을 다실만한 상황이다.
글로벌 해운동맹도 큰 폭의 변화가 예정돼 있다. HMM이 소속한 디얼라이언스의 주축인 독일 하팍로이드는 글로벌 2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손을 잡겠다고 했다. 디얼라이언스는 다른 선사와 손을 잡지 못하면 아시아 선사만 남아 장거리 노선 영업에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해운동맹 변화는 예고됐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불확실성이 커진 인수자 입장에선 달갑지 않다.
국회의원 선거도 변수다. 국책은행 주도 거래는 정치권의 영향을 적잖이 받는데, 이런 선거 정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부 국회의원은 HMM 매각을 정치 쟁점화하려 하지만, 대부분은 큰 관심이 없다는 게 문제다. 정치 지형도가 어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선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해양수산부 모두 기존의 입장을 확인하는 외에 진일보한 의견을 내기 부담스럽다. 당정 고위층에서 중심을 잡고 의견을 조율해주는 곳이 없다면 협상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매각 감사로 KDB인베스트먼트 임직원이 고초를 겪은 것도 봤다.
노조는 노조대로 HMM 매각 반대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매각이 속전속결로 진행됐으면 노조가 끼어들 여지가 적었겠지만 본입찰부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주주간계약 협상까지 계속 늘어지고 있다. 노조가 원하는 ‘자금력 있는 우량 대기업’이었다면 거래가 질질 끌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추가 협상 2주간에 매도자와 인수자가 전격 합의를 이룰 것으로 낙관하기 어렵단 평가도 나온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협상은 지연되고 FI 자금을 조달하기는 쉽지 않은데 노조까지 선거 국면을 활용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며 “HMM 매각 완주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