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가 1.6조 미만일 경우 원금만 회수할 가능성
IPO 실패해도 대주주에 나쁠 것 없는 구조란 평가
매각가 따라 SK 장부손실이 콜옵션보다 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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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적투자자(FI) 주도로 11번가 매각이 진행 중인 가운데 국민연금의 회수 성과에 관심이 모인다. FI의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 행사 시 매각 대금은 FI 투자 원금, SK스퀘어 장부가, FI 수익률 순으로 분배가 이뤄진다. 시장 여건 상 11번가가 SK스퀘어 보유 주식의 장부가 이상으로 팔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국민연금 등 출자자(LP)는 원금 회수에서 만족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보통 기업과 FI 간 거래에서는 주주간계약에 회수 보장 장치를 꼼꼼하게 담는다. 11번가 투자에서는 보장 수익률 3.5%, 5년 내 상장(IPO), 상장 무산 시 드래그&콜(Drag along & Call option) 등 당시 소수지분 투자 거래에 주로 쓰이던 장치들이 활용됐다. 투자 당시만 해도 상장을 하지 못한다거나 투자 회수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는 의견은 많지 않았다.
2022년 이후 유동성 기근에 플랫폼 기업가치 하락이 겹치며 11번가는 증시에 입성하지 못했다. SK스퀘어가 11번가 매각을 추진했다가 실패했고, 이후 FI 지분을 매집하는 권리(콜옵션)도 행사도 포기했다. 배임 소지 등이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됐다. 이에 FI인 H&Q코리아·이니어스프라이빗에쿼티 컨소시엄(지분율 18.8%) 주도로 매각 절차가 재개됐다. SK스퀘어 보유 지분(80.3%)까지 묶어 팔면 회수 성과를 높일 가능성이 커진다. 씨티글로벌마켓증권, 삼정KPMG가 매각을 주관하고 있다.
시장 상황이나 투자 계약 상 11번가 투자자들이 투자 원금 이상을 회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K스퀘어와 FI간 계약에 따르면 SK스퀘어가 콜옵션을 선택할 경우 회사는 FI에 원금과 보장된 수익률을 가산한 돈을 돌려주기로 했다. FI에 돈을 주되 회사의 지배력은 더 높일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FI가 드래그얼롱을 행사할 경우엔 11번가 매각 대금 분배 순위가 조금 달라진다. 11번가 FI가 투자 원금을 먼저 받아 가고, 이후 SK스퀘어가 보유한 11번가 지분(80.26%)의 장부가(작년 반기 기준 약 1조494억원)만큼을 챙기게 된다. 그다음에야 FI가 보장받은 수익률을 채우는 워터폴 구조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11번가 거래에서 콜옵션 행사 때는 투자자의 원금-이자 변제가 최우선이지만, 드래그얼롱에선 투자자 원금 다음에 SK스퀘어의 원금(장부가)이 위치한다"며 "SK스퀘어 입장에선 드래그얼롱이 장부가 일부나마 회수할 수 있는 방식이고, 콜옵션 행사가 주주에 대한 배임이란 논리도 이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즉 FI가 원금을 넘어 약정했던 수익까지 챙기려면 적어도 11번가를 1조6000억원 이상으로 팔아야 한다. 시장에선 11번가 몸값이 1조원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다. 매각 성사 시 소수지분 투자자가 드래그얼롱을 행사한 첫 성공 사례로 기록되겠지만 회사도 투자자도 반색하긴 어렵다.
이에 FI가 원금 이상의 값을 받기 위해 11번가 매각을 무리할 이유가 없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다만 사업 파트너인 SK스웨어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추가 이익을 낼 가능성도 희박하게나마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좋은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선관주의 의무를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11번가 매각가가 5000억원 이상이라면 국민연금이 순손실을 기록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SK스퀘어는 상대적으로 셈법이 더 복잡하다. 콜옵션 행사 시 수익률을 얹어줘야 하는 부담은 피했는데, 11번가가 너무 싼값에 팔려 버리면 콜옵션 행사 비용보다 장부가 손실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회사는 콜옵션을 포기하며 배임 논리를 내세웠기 때문에 이제 와서 11번가 장부가를 미리 상각하는 등 방식도 택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