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에도 실리지 않은 그룹의 비전과 전망
주주와 기관, 직원들은 '일본 신문' 통해 읽어야
-
한국 언론을 신뢰하지 못하는 걸까. '회장님의 정체성' 때문일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신 회장은 30일 요미우리신문과 진행한 '日韓から真のグローバル企業に…ロッテホールディングス会長 重光昭夫氏(한일에서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시게미쓰 아키오 롯데홀딩스 회장)' 제하의 인터뷰에서 말 그대로 롯데그룹 경영의 리뷰와 프리뷰를 상세하게 직접 설명했다. 요약을 하자면 사업 성과에 따라 부진한 사업은 과감히 포기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거다.
신 회장은 과거 M&A 중심의 외형 확장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몇 년을 해도 잘되지 않는 사업은 다른 기업에 부탁하는 것이 종업원들에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전했다. 앞으로 몇몇 계열사들의 매각 계획도 직접 밝혔다.
그러면서 바이오 테크놀로지, 메타버스, 수소에너지, 이차전지 소재 등을 신성장동력으로 제시하며 그룹의 사업 방향을 이쪽으로 틀겠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에 따르면 그룹의 미래를 이끌 계열사는 롯데바이오로직스, 롯데헬스케어, 롯데정보통신, 롯데케미칼,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등이 꼽힌다.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한국과 일본의 사업 환경 차이를 언급한 부분이다. "일본과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의 큰 차이는 인재의 유동성에 있다"며 "그동안 일본적 경영을 하고 있어 외부 인재가 적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인재로 해야 한다고 판단해 전문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바이오 분야에서 외부 인재 영입 사례를 들기도 했다.
그동안 롯데그룹의 경영이 일본 스타일이었다는 점을 인정했고, 앞으로는 한국 스타일로 하겠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얘기를 우리는 왜 우리 언론을 통해서 직접 듣지 못하고 일본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어야 하는걸까. 심지어 올해 신년사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던 디테일한 얘기들을 기사를 통해 확인해야 했다. 물론 신 회장이 한국어보다 일본어에 더 정통하기에 일본 신문과의 인터뷰가 더 편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또 한국에 비해 좀 더 호의적인 일본 언론의 분위기도 한몫 했을 테다.
그럴수록 다른 수를 썼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어느 언론사여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필요하면 통역도 붙이면 된다. 한국 스타일의 경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이런 그룹의 비전 제시를 한국 언론의 입을 통해 투자자와 계열사 임직원들, 그리고 고객들에게 먼저 설명하는 게 순서 아니었을까.
행여 국내 언론 인터뷰가 탐탁지 않았다면 직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이나 사내 창구를 통해 알리는 방법도 있다. 최소한 롯데의 미래를 걱정하는 임직원들은 요미우리 신문보다는 먼저 오너의 비전을 들을 권리가 있지 않을까.
신동빈 회장은 이미 정체성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누군가는 어눌한 모국어를 쓰는 걸 탓하며 "롯데그룹이 어느 나라 기업이냐"고 되묻기도 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한국의 롯데그룹을 만들겠다"는 신 회장이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그룹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안팎에서 나오는 와중에 신 회장의 이번 선택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설사 신 회장이 먼저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만류하고 국내로 방향을 틀 것을 조언할 보좌진이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