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열흘 미뤄진 이재용 회장 1심 선고 앞둔 때
"주주 위한 선택" 증명하듯…주가 급등한 채 재판 맞아
상속세 납부 일정 동일해진 자사주 소각…지배력도 급등
-
삼성물산이 자사주 소각 일정을 앞당기자 주가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당초 5년에 걸쳐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한 결정을 3년으로 단축한 덕이다. 공교롭게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에 대한 선고를 일주일여 앞둔 시점이다. 당겨진 삼성물산의 자사주 소각 계획은 이 회장의 남은 상속세 연부연납 일정과도 맞물린다.
-
1일 삼성물산은 전일보다 7.75% 오른 14만8700원에 마감하며 3년 내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5거래일 전만 해도 지난 3년 박스권에 머물던 주가가 30%가량 치솟은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지난달 31일 삼성물산이 새로 내놓은 주주환원 정책이 주가 급등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삼성물산의 강화된 주주환원 정책은 보유 중인 자사주 잔여분을 내후년까지 모두 소각하겠다는 게 골자다. 삼성물산은 과거 제일모직과의 합병 과정에서 전체 발행주식의 13%(보통주 기준)에 달하는 자기주식을 보유해 왔다. 작년 2월 15일 삼성물산 이사회는 보통주 13.2%와 우선주 9.8%를 5년 내 전량 소각하겠다고 밝혔는데, 31일 실적 발표회에서 이를 3년으로 단축시킨 것이다.
이재용 회장 재판을 포함한 삼성그룹 일가의 사적 일정을 감안하면 주주환원 강화책 발표 시기가 공교롭다.
오는 5일엔 이재용 회장의 불법합병·회계부정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원래 1월26일 예정된 선고기일이 지난 22일 변경된 것이다. 재판 일정이 미뤄진 뒤 삼성물산이 주주환원책을 강화한 덕에 삼성물산 주가가 급등한 채로 이재용 회장이 1심 선고를 맞이할 수 있게 됐다.
삼성물산 주가는 1심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재판이 다루는 핵심 혐의 중 하나는 최대주주의 불법한 승계 과정에서 주주들에 피해를 입혔다는 점이다. 지금 삼성물산 주가가 오른다고 구 삼성물산 주주에 대한 배임 등 혐의가 벗겨지진 않는다. 그러나 합병이 주주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이재용 회장 주장엔 힘이 실릴 수 있다. 1심 판결을 코앞에 두고 최대주주와 일반주주 사이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된 것이다.
자사주 소각 계획을 앞당기며 주가가 크게 오른 만큼 삼성그룹 일가의 남은 세 차례 상속세 납부 계획도 순탄해졌다.
지난해 삼성물산이 3개년 단위로 발표하는 배당 정책에 더해 처음 자사주 전량 소각 계획을 밝혔을 당시 시장에선 ▲자기주식을 지배구조 개편 재원으로 활용하지 않고 ▲주주 가치 제고에 힘을 싣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호응했다.
당시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일가 보유 삼성물산 지분의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었다. 올해를 기점으로 6년에 걸친 상속세 연부연납 일정이 후반으로 접어드는 데다 시중금리 인상으로 주식담보대출 이자 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4명의 피상속인은 지난 2021년 이후 매년 4월 약 2조원 규모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 11월 이부진 사장은 상속세 납부 목적으로 삼성물산 보유 지분 0.65%를 블록딜로 처분했다. 자사주 소각 계획이 없었다면 상성물산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은 기존 33.47%에서 약 32.8%까지 떨어질 수 있었다. 지분 33.3%는 현행 상법상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과 결부해 안정적 지배력을 가르는 상징적 수치로 통한다.
5년에 걸친 자사주 소각 계획을 2년 앞당긴 덕에 피상속인의 추가적인 블록딜이 없다면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은 약 38%까지 늘어난다. 실제로 피상속인 4명의 삼성물산 지배력은 이번 발표와 함께 진행한 자사주 소각만으로도 30.89%에서 32.5%로 늘어났다. 일가가 지배력에 대한 우려 없이 상속세 납부용 블록딜에 나설 여력이 늘어난 셈이다.
이재용 회장으로선 그룹 지배구조 중심인 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해 상속재원으로 활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자사주 소각을 앞당겨 주가를 끌어올린 만큼 주식담보대출 여력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재용 회장은 아직 삼성물산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