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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의 연착륙은 현 정부의 가장 큰 과제가 됐다. 태영건설이 표면에 드러나긴 했지만, 수면 아래 드러나지 않은 부실은 가늠하기 어렵다. 상황의 중대함을 나타내듯 부동산 시장 수술을 위해 칼을 잡은건 역시 대통령의 복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다.
이 원장의 최근 발언들은 단순하지만 상당히 강경하다.
이 원장의 행보와 발언들은 대통령의 의중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원장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 금융기관 수장과 임직원 모두가 숨죽이며 귀를 기울이는 상황인데 ‘으름장’에 가까운 말들은 마치 ‘공포정치’를 연상케한다. 금융투자업계를 비롯해 투자를 주목적으로 삼는 금융기관들에 대한 보수적 기조와 책임론을 강조하는 모습은 자본시장의 우려를 낳는다.
이 원장은 이달 중순 한 간담회 행사에서 기획재정부가 추진중인 부동산PF 사업에서 시행사 총 사업금 대비 자기자본비율 상향과 관련해 “100%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책임이 될 수 있는 상태로 부동산 개발 시행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증권사 최고경영진(CEO)와 만나 “단기적인 이익 창출을 우선시하는 금투업계 성향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고 했고, 성과보수 체계를 언급하며 “부동산 PF 쏠림, 과도한 단기자금 의존 등과 같이 리스크 관리의 기본이 망각되는 일이 없도록 CEO가 직접 챙겨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자본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PF 구조는 건설업을 이끌고 주택과 다양한 인프라를 공급할 수 있는 유용한 방안이었다. 물론 과거 저축은행사태와 같이 부실 PF로 인한 건설사 연쇄 도산과 금융업 전반에 걸친 위기로 확산하기도 했지만, 그 결과 부동산 투자에 대한 업권별 명확한 구획이 나눠지면서 리스크 관리가 강화한 순기능도 있었다. 실제로 2010년도 이후 시중은행들은 부동산PF의 취급을 대폭 줄여온 반면, 그 자리는 모험자본과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필요로하는 금융업권의 차지가 됐다.
시행사의 자기자본 투입 비율을 강화하는 정부의 기조는 일견 이해할만 하지만, 자칫 과도한 규제는 건설업의 위축과 더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한 금융산업의 위축을 야기할 수 있단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사실 자기자본으로 PF를 일으켜 사업을 A부터 Z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일명 디벨로퍼는 건설업을 영위하는 우리나라 대기업군 건설사 몇몇곳을 제외하곤 전무하다. 정부의 방침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행사와 금융기관의 ‘무한책임’을 강조하는 금감원장의 의중이 현실화한다면, 향후 건설업과 그 주변 산업의 붕괴가 먼 나라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최근 금감원은 부동산PF 성과보수를 일시에 지급하는 등 일부 증권사들의 행위를 적발하고 제제절차에 착수했다.
증권사 임직원들이 수십억원의 성과급을 일시에 받는 것은 이미 이연성과급 제도로 방지돼 왔고, 이번 금감원의 조사도 해당 제도 위반을 적발한 것이다. 다만 사례의 대부분은 부동산PF 성과급에 집중돼 있었다. 금감원은 이 원장이 증권사 CEO 간담회에서 성과급 문제를 언급한 직후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사실상 ‘부동산PF’와 ‘성과급’이 이 원장이 악(惡)으로 꼽은 키워드로 여겨졌다.
부동산PF의 위기를 기회삼아 일부 증권사, 소수의 임직원들이 과도하게 향유하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성과급’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시스템 개선의 대안 없이 금융당국 차원에서 무차별 제재를 가하기 시작한다면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도 무시해선 안된다.
상당수의 증권사를 비롯해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투자업계에선 ‘성과급’이 근간이다. 제도권테두리 안에서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좋은 거래를 발굴하고 성사한다면 그게 사장이든 실무진이든 수 억원, 수 십억원의 성과급을 받을 수도 있다. 업무와 고용의 안정성이 담보되는 은행과는 달리 고용과 업무의 불안정성을 보상하기 위한 투자금융업계의 체계다.
금융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활력을 주고자 하는 노력은 이번 정부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펀드 만능주의’에 빠졌던 전 정부에 이어 ‘은행 만능주의’에 빠진 이번 정부는 모든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은행을 앞단에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보니 은행을 제외한 모든 금융기관에 은행에 준하는 리스크관리를 주문하고, ‘투자자 보호’를 기본으로 삼아 정상적인 투자 활동마저 저해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사실 이 원장의 말대로 “리스크 관리 실패로 인해 금융시장에 충격 요인으로 작용할 경우에는 해당 증권사와 경영진에 대해 엄중하고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는 원칙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기본중에 기본이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 무엇보다 PF로 인한 위기가 고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증권사들을 향해 ‘절대 사고치지 말라’는 선전포고와 같이 느껴진다.
모든 금융기관에 대해 안전제일을 목표로 ‘은행화(化)’하려는 금융당국의 노력은 일명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자칫 대통령의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금감원장의 발언들이 반(反)시장주의, 반(反)자본주의로 비쳐지고 법제화하지 않는 사적제재로 여겨진다면 한국 자본사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입력 2024.02.05 07:00
Invest Column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4년 02월 0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