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당합병·회계부정과 관련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상황만으론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다소 해소된 것으로 보이나 검찰의 항소 여부에 따라 지난한 재판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합병’을 통해 기존 삼성물산 주주들이 이득을 봤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실상은 삼성그룹이 최초 내세운 합병의 시너지는 예상치에 근접하지도 못했다. 이 회장의 ‘유죄’를 주장한 검찰이 내세운 논리는 “기존 삼성물산 주주들이 합병을 통해 손해를 입었다”는 것인데, 다시 시작될 법정공방선 역시 삼성물산이 합병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룹차원에선 이를 위해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뚜렷한 성장성이 보이지 않는 삼성물산의 각 사업부들, 예년과 같이 돈 못버는 삼성전자 등 현재의 상황을 비쳐볼 때 삼성물산이 믿을만한 구석은 역시 바이오 밖에 없단 평가도 나온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삼성전자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것,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배구조를 일원화하는 작업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명 삼성생명법은 이번 국회에서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구획 정리 과정은 좀 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에서 가장 기대감이 큰 사업부는 역시 바이오 부문이다. 삼성그룹은 바이오산업을 2010년에 신수종사업, 2018년에 4대 미래성장 사업으로 꼽으며 힘을 싣고 있는데 2011년과 2012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해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후 바이오는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당위성을 입증할 주요 사업으로 부상했고, 여전히 회계부정 이슈는 해결되지 않는 과제로 남아있다.
사업적으로만 본다면 바이오 사업의 성과는 이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연매출 약 3조7000억원, 영업이익 약 1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이재용 회장의 선고와 맞물린 상황, 그 어떤 시기보다 삼성물산의 가치 증대가 필요한 시점에서 바이오로직스는 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 시대에 들어섰다.
실제로 바이오의 사업 성과는 삼성물산에 직결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물산이 지분 43%를 보유한 연결 자회사이다. 삼성물산의 연결 실적에서 바이오부문은 매출 기준 건설과 상사에 이어 세번째로 큰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영업이익 기준으론 가장 많은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다.
물론 현재로선 삼성물산이 지분을 일부(43%)만 보유하고 있고, 바이오로직스가 현금배당을 실시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사업 호조의 효과를 누리는데는 제한적이다. 앞으로 바이오로직스의 현금창출 능력이 개선되고, 배당의 가능성까지 높아진다면 삼성물산의 기업가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바이오로직스는 분기 보고서를 통해 “주주가치 제고와 주주환원 확대를 위해 투자, 재무구조, 배당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배당을 결정할 계획”이라며 구체적인 시기는 2025년 이후라고 발표했다. 대략 해당년도 이영현금흐름(FCF)의 10% 내외의 현금배당 실시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삼성물산의 배당은 현재 전액 자회사 배당에 의존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기업 포트폴리오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배당에 의지하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앞으로 바이오로직스의 배당을 통해 삼성물산에 직접 현금이 유입된다는 것은 결국 삼성물산 주주환원 규모의 확대와 투자자 유치, 기업가치 상승과 맞닿아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사업 확장→현금 창출력 증대→기업가치 상승→주주환원 확대’의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는다는 것을 전제로 둔다면, 앞으로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동시에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배구조의 변화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31%를 보유한 2대주주이다. 다소 기형적인 지배구조를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삼성물산이 삼성전자가 보유한 바이오로직스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 또한 추진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다. 그렇다면 삼성물산으로 향하는 바이오로직스의 배당 규모도 늘어날 여지가 충분하다.
앞으로 수년간 사법 리스크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할 이재용 회장, 건설·상사·패션·리조트 등 사업적으로 타개책이 보이지 않는 삼성물산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최근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단기간에 10% 이상 대폭 상승한 것은 거의 10년만의 일이다.
이는 저PBR 기업들에 대한 관심도가 집중된 측면도 존재하지만,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의 실적부진에도 불구 최대 규모 주주환원책을 발표한 배경이 작용했다. 이 회장의 선고 공판을 앞둔 시점에서 여러가지 해석의 여지를 남겼지만, 일단 삼성물산의 깜짝 발표는 투자자들에게 호평을 이끌어 낸 것도 사실이다.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일, 보다 적극적인 환원책으로 투자자들의 주목도를 높이는 일, 이를 통해 그룹내 삼성물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업은 이 회장의 재판이 진행하는 과정에서 착착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입력 2024.02.06 07:00
취재노트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4년 02월 05일 19:0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