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주도권 힘겨루기…결국은 돈 문제가 발목
매도자는 '불안안 인수자' 견제 장치 확보 원해
JKL 회수 이견도 걸림돌…산은 책임론 불가피
한번에 성공 못하는 산은…다음엔 더 어려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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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HMM 매각이 결국 무산됐다. 매각 후 경영 주도권을 둔 힘겨루기 양상이었지만 이면엔 하림그룹의 인수체력, 재무적투자자(FI)의 자금 회수 등을 둘러싼 고민이 엿보였다. 처음부터 제기됐던 우려를 결국 해소하지 못한 양상이다.
이번 결과로 매각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던 산업은행에 대한 책임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번에 일을 성사 시키지 못한다는 인상이 재확인됐다. 다음 시도에서는 매각 난이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산은 “일부 사항 이견”…하림 “실질 경영권 담보 안해줘”
산업은행은 팬오션·JKL 컨소시엄과 7주에 걸친 협상을 진행했으나 ‘일부 사항에 대한 이견’으로 최종 결렬됐다고 6일 밝혔다. 팬오션도 7일 오전 매도인 측으로부터 협상 결렬을 공식 통보받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산업은행은 작년 12월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후 5주간 주식매매계약 및 주주간계약 협상을 이어갔다. 하림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매도자의 영구채 주식 전환 3년간 제한 등 조건을 포기하고, 3년간 배당 제한 등 매도자의 요구를 수용하며 의견을 좁혀갔다.
그러나 매각 후 경영 주도권, 재무적 투자자(FI)의 지분 매각 제한 등 조건을 둔 이견은 평행선을 달렸다. 매도자는 HMM의 경영에 관여할 장치를 원했지만 하림그룹은 이에 난색을 표했다. JKL파트너스에 대해선 5년간 주식 매각 제한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팬오션 측은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주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 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존심 싸움 이면의 핵심은 결국 ‘돈 문제’
하림그룹은 자체 자금, 인수금융, FI 등을 통해 8조원 정도의 HMM 인수자금 조달 계획을 수립했으며, HMM의 유보금은 회사의 미래경쟁력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쓰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표면적으로는 HMM 인수에 전혀 무리가 없다. 팬오션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도 높이 평가된다.
시장의 시각, 특히 해운업계의 생각은 하림그룹과 조금 달랐다. 기업집단 순위가 낮은 기업이 더 높을 기업을 인수하는 데 따른 위험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고금리 환경, 침체하는 해운업 경기 등을 감안하면 하림그룹이 대규모 외부 자금을 감수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산업은행도 HMM 매각에 앞서 자문사를 통해 현대차와 포스코를 찾은 바 있다.
매도자는 HMM을 매각한 후에도 국내 유일의 대형 컨테이너 선사를 보호할 장치를 갖길 원했다. 이후 지분율이 어떻든 중요 사항에 대해선 산업은행 등의 동의를 받으라거나 이사회에 자리를 달라는 등의 요구가 있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하림그룹은 과도한 간섭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는데, 매도자 입장에선 견제 장치 없이는 불안해 보이는 인수자를 믿기 어려웠을 수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 측에선 안보와 연계된 유일 정기 선대가 무너지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으니 주식을 갖고 있는 한 계속 관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JKL파트너스는 이번 거래에서 수천억원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잠재 출자자(LP)들은 여러 불안 요소를 잠재울 안전장치를 원했는데, 회수가 중요한 사모펀드(PEF) 특성상 5년간 주식을 매각하지 못하는 점은 불확실성이 너무 컸다. 이에 매도자 측에서 JKL파트너스를 제외하는 안을 역제안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하림그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FI 자금 수천억원이 아쉬운 거라면 매도자의 걱정은 합리적이다. 그도 아니라면 JKL파트너스와의 밀접한 관계가 독이된 모습이다.
‘첫 시도엔 성공 못하는’ 산업은행, 책임론 부상 불가피
산업은행은 초기부터 제기된 여러 우려에도 HMM 매각을 밀어붙였다. 자본비율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고, 지지부진한 ‘부산 이전’ 작업을 만회할 성과도 필요했다. 금융사가 산업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주장 역시 명분이 있었다.
초대형 기업이 불참한 상황에서 유효 경쟁을 만들어내고, 예정가격을 넘긴 후보를 찾아온 것은 성과다. 다만 처음부터 사공이 여럿이고 금융 논리(산업은행)와 산업 논리(해양진흥공사)가 부딪쳤기 때문에 거래 난항은 예고됐었다. HMM 매각을 기안하고 이끌던 선장(안영규 전 산업은행 부행장)은 중도에 물러났다. 국회의원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정부의 HMM 매각 관심도 줄었다.
결과적으로 HMM 매각은 무산됐다. 산업은행이 주도한 구조조정 중 한번에 순탄하게 성사된 거래는 손에 꼽는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십수년을 건너 뛰어서야 새 주인을 찾아줬고, KDB생명은 매각 시도에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국적 항공사 통합도 수년 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고, 대우건설 매각 때는 초유의 ‘재입찰’로 구설에 올랐다.
여러 어려움과 변수가 있었지만 HMM 매각 실패에 대한 책임은 이를 주도한 산업은행이 먼저 부담할 수밖에 없다. 성공 가능성을 면밀히 따지기보다 일단 설정한 목표를 향해 달리고 보는 산업은행의 전략 수행 방식도 다시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다음 시도엔 난이도 더 높아질 HMM 매각
HMM은 일단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공동 관리 체제를 이어가게 됐다. 이후 다시 매각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번에 불거진 문제들은 다음 시도에서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초대형 기업이 아닌 다음에야 HMM 인수를 노리는 곳은 정부와의 공생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엔 해운업이 더 깊은 침체 구간을 지날 수도 있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갖고 있는 영구채의 주식전환 시기는 속속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도자가 들고 있는 주식과 잠재 인수후보의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HMM 매각 후 최대주주-채권자 구도가 예정됐지만, 다음 시도 땐 대주주-대주주의 형태가 된다. 산업은행 등이 주식을 전부 팔지 않는다면 더 확실한 주주 입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HMM 매각에 관여한 자문사, 금융사 등은 막판까지 거래 성사를 기대했다. 작년과 올해를 관통한 초대형 거래니 놓치기 아까운 기회였다. 그러나 거래가 진행되면서 여러 어려움이 드러났고, 시장을 이기는 거래는 없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다음 매각 시도에서도 조단위 출자확약서(LOC)를 척척 끊어줄 곳이 나타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