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자기자금 척척 썼지만 이제는 잇단 악재에 발목
소규모 신사업 투자만 가능…외부자금 더 활용할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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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그룹은 수년 전부터 기업형벤처캐피탈(CVC) 육성에 관심을 가졌다. 대기업 CVC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 벤처캐피탈을 활용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물색하겠다는 것이었다. 계열사가 직접 벤처투자를 할지 아니면 별도 법인을 설립할지 논의가 이어졌다.
2020년 신세계백화점 쪽에서 시그나이트파트너스를 설립했다. 그룹 안에 벤처투자 회사를 여럿 둘 필요성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마트는 내부 조직에서 벤처투자 업무를 맡기로 했다. 강희석 이마트 대표 등 전임 경영진도 CVC를 활용하기보다 직접 투자하는 게 낫다 판단했다.
몇 년이 지나 이마트는 다시 CVC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CVC 담당 팀을 키워 관련 투자 업무를 확대하기로 했다. 미래 성장성 있는 투자처를 찾아 인사이트를 얻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복안이다. 기존에도 오케이미트 등 여러 벤처 투자를 해왔고, 신성장 동력은 항상 필요하니 특히 새롭다 볼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 벤처투자를 고민할 때와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예전엔 다양한 새로운 시도 중 하나였다면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꺼내든 카드 같은 느낌이다. 전임 대표와 한채양 신임 대표의 벤처투자 전략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마트는 작년 연결기준 46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다. 본업인 대형마트의 부진이 이어졌고, 신세계건설도 분양실적 부진으로 미래 예상 손실을 선반영한 데 따른 것이다. 정유경 총괄사장이 이끄는 ㈜신세계가 439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과 대비됐다.
이마트의 투자 성적표도 아쉽다. 회사는 2021년 이후 벤처투자 외에도 지마켓(전 이베이코리아), 더블유컨셉, SCK컴퍼니(스타벅스), 미국 와이너리(쉐이퍼 빈야드) 등 대형 M&A를 잇따라 진행했다. 그러나 이마트와 시너지 효과는 뚜렷하지 않았고 회사의 재무부담은 커졌다. 이마트가 버는 돈으론 지마켓 인수를 위해 빌린 돈의 이자도 내기 어렵단 평가가 따랐다. 지마켓 인수에 따른 책임론이 두고두고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이마트는 본업의 부진, 대형 M&A에 따른 재무부담만 해도 허덕일 수밖에 없는데 신세계건설의 위기론까지 확산하는 상황이다. 이마트, 신세계프라퍼티 등이 자기 돈을 척척 쓰고, 부족하면 부동산을 팔기도 했지만 이제는 확장을 위해 곳간을 열기 어렵다. 받아올 만한 자산이 없나 사모펀드(PEF)들이 예의주시하는 기업 중 하나가 됐다.
이전까지 진행한 벤처투자 성과가 두드러진 것도 아니다. 이전에는 소수지분에 투자하고 이마트의 유통력을 활용해 키운 후 투자회수 혹은 완전 인수 등을 고민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유통 시장의 영향력도 전만 못하다. 벤처투자에 관심을 들인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실패에 가까운 평가를 받는 투자 포트폴리오도 나타나고 있다.
이마트는 자기자본투자(PI) 성격으로 한 건당 많게는 수백억원 규모 벤처투자를 집행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러기 쉽지 않다. 자금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투자 실패 시 충격파를 혼자 감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새로운 투자를 통해 시장의 아이디어를 얻는 것을 게을리 할 상황도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소형 투자니 CVC 분야에 힘을 더 줄 수밖에 없다. 자기 자금보다 외부 투자자와 힘을 합치는 방식의 투자가 더 늘어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이마트는 돈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PI 성격으로 투자금 전부를 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투자 여력이 많이 줄었다”며 “돈은 없고 신사업은 계속 발굴해야 하니 외부 자금을 더 활용하는 형태의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