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경쟁 리더십 중요성 커지는데 존재감 흐릿한 삼성
DX 내 여전한 각개전투…HBM 못지 않은 실기 될 가능성
전선은 넓은데 책임은 분산…AI 성패 책임질 리더십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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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 15일(현지시각) 구글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제미나이 1.5 프로'를 선보였다. 대형언어모델(LLM) 생성 AI가 시장을 뒤흔든 지 1년여 만에 문자·사진·영상을 다루는 멀티모달 AI 경쟁으로 국면이 전환된 것이다. 그러나 시장 관심은 같은 날 새 AI 서비스 '소라(Sora)'를 발표한 오픈AI가 모두 챙겨갔다. 문장을 입력하면 영상을 생성하는 AI인데, 시장에선 구글 발표가 묻혀버렸다는 관전평을 내놨다.
직후 국내에서도 삼성전자가 자체 AI를 탑재한 하만 스피커를 출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무관심에 가까운 분위기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자체 AI 반도체 프로젝트를 위해 1000억달러(원화 약 133조원) 자금 모집에 나선다는 소식을 알렸고,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의 7조달러(원화 약 9000조원) 펀딩 계획과 경쟁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연일 쏟아지는 소식들은 AI 패권 경쟁이 기술을 넘어 자본력 다툼으로 본격 확장하는 국면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총괄 지휘하는 리더십의 중요성도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이 경쟁에서 변방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도 반도체(DS) 외 기기 경험(DX) 부문이 국내외 경쟁사·고객사와 손발을 맞추며 AI로 뱃머리를 돌려 힘을 싣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다. 그러나 시장에선 ▲사업 전반을 아우르는 AI 전략이 무엇인지 ▲그런 메시지를 던지고 중대 결정을 내릴 주체가 누구인지 뚜렷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히 경쟁사 대비 AI 패권 경쟁에서 존재감이 흐릿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초부터 모바일(MX) 사업부가 갤럭시 시리즈를 위시해 온디바이스 AI 시장 선점에 힘을 쏟는 시기에 자회사 하만이 시선을 분산시킨 장면도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삼성전자 기기 사업을 통합한 DX 출범 3년째에도 종전 무선(IM) 따로, 가전(CE) 따로 각개전투가 이어지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소위 층별로 다양한 물건을 쌓아두고 판매하는 백화점식 영업이 AI 시대 들어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우려다.
컨설팅 업계 한 관계자는 "하만 AI 스피커 소식은 업계에서 부상하는 온디바이스 AI보단 여기에 편승하기 위한 제조업체의 흔한 마케팅 전략을 떠올리게 하는 편"이라며 "MX의 갤럭시가 구글과 AI 협력에 나선 것과 비교하면 DX 내에서 전체 기기 사업에 통일된 전략이 없고 심지어 각 사업부마다 AI에 대한 이해도, 접근 방식에서도 격차가 벌어지는 모습으로 비친다"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갤럭시를 관장하는 MX 사업부가 애플보다 앞서 AI 스마트폰 시장 선점에 나선 데 대해선 시장 기대감이 높다. AI 역량에서 앞서 있는 구글과 맞손을 잡은 전략도 업계에선 긍정적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DX 부문 전체로 보자면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온다.
증권사 삼성전자 담당 한 연구원은 "IM과 CE 사이 장벽을 허물지 못하면 애플처럼 기기 전반에 동일한 사용 경험을 제공하지 못해 생태계 조성까지 나아가기 어렵다는 진단이 이미 오래 전에 내려졌다. AI 경쟁도 결국 마찬가지"라며 "초연결, 에코시스템을 내걸긴 했지만 애플처럼 서비스 매출과 같은 소프트웨어 성적은 IR에서도 공유되지 않고 있다. 결국 DX로 통합했을뿐 각 사업부마다, 기기마다 여전히 대당공헌이익(ASP)이나 시장 점유율 같은 지표로만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든 온디바이스 AI 시장은 MX 사업부를 넘어 DX와 DS부문을 포함한 삼성전자 전사 차원 격전지로 꼽힌다. 모바일 시대 유일하게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 통합에 성공한 애플과의 1대1 경쟁이 AI 시대 들어선 글로벌 빅테크 전반으로 무대가 확장한 셈이다. AI가 스마트폰 이상의 파괴적 변화를 예고하는 만큼 총괄 리더십 부재는 DS 부문 고대역폭메모리(HBM) 사례처럼 재차 전략적 실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전사 차원은 물론 DX 부문에서도 AI 기기 사업을 총괄하는 수장직은 따로 두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AI 역량은 선행 연구개발(R&D) 조직인 삼성리서치가 맡고 있고 사업화는 각 기기 사업부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체계"라며 "최종적인 책임자는 한종희 DX부문장 대표이사지만 AI 사업만을 총괄하는 자리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달리 보자면 AI 경쟁에서 삼성전자 각 부문이나 전사 성패를 책임질 리더십이 아직은 없다는 얘기다. 삼성전자가 경쟁사 대비 유달리 전선이 넓어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하단 점을 감안해도 AI 경쟁을 본격화하기엔 취약한 상태라는 평가를 받는다. 양면전쟁 수준으로 전선이 확장했음에도 책임이 분산돼 있다는 건 최종 책임을 질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각에선 갤럭시 시리즈가 DX 부문 자체 생태계와 DS 부문 AI 반도체 성과로 이어지는 관문 역할을 하는 만큼 MX의 성공이 우선이란 시각도 있다. 그러나 갤럭시S24를 중심으로 한 삼성전자의 AI 생태계 역시 아직은 구글과의 협업을 통한 초기 시험 단계로 볼 수 있다. 누가 주도권을 쥐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구글은 지난해 직접 폴더블폰을 내놓았다. DX 내 스마트TV 등 가전 사업 전반을 위협할 수 있는 기기 사업부터 자체 반도체 설계까지 삼성전자와 다방면에서 충돌하는 경쟁사이기도 하다. 가령 구글과 삼성전자의 동맹 전선이 깨지게 되면 MX 사업부가 주도권 경쟁의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HW와 SW는 물론, 반도체까지 경쟁 영역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분석은 정설처럼 자리잡고 있다. 샘 올트먼과 손정의, 엔비디아의 젠슨 황, 인텔의 팻 겔싱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등 테크 기업 CEO들이 저마다 AI 시장 전략에 대한 메시지를 내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느 방면으로든 지배적 사업자로 올라서겠다는 의중이 깔려있다.
한국의 경우 이와 견줄만한 AI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사실상 이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체급의 삼성전자를 겨냥한 지적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전사적으로 AI 사업을 풀어낼 수 있는 재료는 많은데 총괄 셰프는 없는 상황으로 비유할 수 있다. TF(태스크포스) 체제 이후 지적된 공동책임은 무책임이라는 말이 AI 영역에서도 반복되는 것"이라며 "임금 협상 과정에서 사업부 별 노조마다 영업이익 기여도를 각기 따지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AI 전쟁이 한창이지만 성과지표부터 원팀이 아니라는 얘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