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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오늘도, 재계든 시장이든 삼성전자는 우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묻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그 역할을 할 자격이 있는지.
십여년 전 한 증권사는 '삼성전자, 글로벌 IT 기업 중 시총 2위 가능'이라는 내용이 담긴 리포트를 내놨다. "삼성전자 시총 순위는 글로벌 IT 기업 가운데 5위인데, 6위와의 격차가 커 당분간 5위 수성이 가능하다. 오히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과의 시총 차이가 20억달러에 불과해 사상 처음으로 2위까지 올라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이다.
당시 삼성전자의 시총을 넘기 위해서는 코스피 상위 10개 종목을 더해야지만 가능했다. 이러니 한국 주식시장은 삼성전자에서 시작해 삼성전자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지금,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존재감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440조원 정도. 앞서 리포트에서 언급된 회사들을 보면 구글은 1268조원, 마이크로소프트는 4007조원으로 IBM을 제외하면 압도적인 차이로 벌어졌다. 거기에 지난달엔 ASML(488조원)에까지 시가총액에서 밀려나 버렸다. 코로나 이후 다 같이 IT훈풍을 받았는데 삼성전자만 수혜를 못받은 느낌이다.
지난주엔 일본 도요타자동차(498조원)가 7년 반만에 삼성전자를 제치고 아시아 시총 2위 기업이 됐다. 엔화 약세에 따른 실적 개선이 주요인으로 꼽히지만 일본의 간판 기업이자 자동차 제조기업이 글로벌 IT 시장에서 자웅을 겨루던 삼성전자를 제쳤다는 건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시총 1위 TSMC(877조원)과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십여년 전 삼성전자 시총을 예상한 그 리포트가 무색해지는 걸 넘어 얼굴이 붉어질 정도다. 그럼에도 한국 투자자들은 삼성전자를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게 10년 동안 한국의 투자 시장도 정체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삼성전자의 위상은 여러 면에서 지금과 달랐다. 모두가 시샘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1등 기업이었다. "삼성전자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계 전체가 삼성전자만 바라봤다. 의도치 않게 삼성전자가 기준을 제시했다. 대관이든, 홍보든 '삼성전자가 그렇게 하더라'가 변명이 될 정도였다.
그렇다보니 삼성전자가 본의와 다르게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한 요소였다는 지적은 생각해 볼만하다. 기업들이 바로미터를 바꿀 생각을 안하니 삼성전자를 넘어선 기업은 나오질 않고, 전반적인 수준도 높아지지 못했다는 거다. 억울할 수 있겠지만 삼성전자를 탓하는 건 아니다. 그만큼 삼성전자라는 존재감은 우리에게 크게 각인돼 있다는 얘기다.
이젠 그 부담을 놓아주자는 거다. 리즈 시절 삼성전자가 아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총수도 경영진도 바뀌었다. 대내외 제반 환경도 달라졌다. 그러니 과거의 똑같은 기준으로 바라보지 말자는 거다.
아쉬운 건 이런거다. 그 때의 삼성전자는 누구보다 앞에 서 있었고,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걸 하려는 독보적인 회사였다. 그래서 세계의 주류 중심에 들어가 있었다. 지금의 삼성전자를 보면 앞서 있는 경쟁자들이 더 많아졌고, 남들이 하고 있는 걸 따라가려는 모습이 짙다. 세계의 주류에서 한 발 떨어졌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삼성전자는 뭔가 주눅이 들어있고 결정을 주저하는 것 같다. 책임질 일은 만들지 않으려는 것 같다. 국내에서 여러 정치적 부침 때문이라면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치이다보면 만사가 귀찮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놓아주자. 그 부담에서 벗어나면 더 나은 '성과'를 보여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동안 다른 기업들도 이제 '삼성전자'가 만들어 놓은 그늘에서 벗어나 진짜 각자도생을 해야 한다.
입력 2024.02.29 07:00
Invest Column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4년 02월 2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