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자율 제안 없고, 보호장치도 미흡
대상은 49% 이하, 구주가격도 신주와 동일
제안서에 밸류에이션·투자금만 '빈칸' 으로
효성캐피탈 매각 성공 전례에 자신감?
매각가, 신설회사 부채 연대책임 등 선결 과제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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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3조원, 부채비율 4941%, 2년 연속 순손실, 신용등급(A-)은 더 이상 ‘A급’을 지키기 어려워진 상황. 효성화학이 특수가스 부문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주채권은행(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에선 효성그룹에 강력한 재무구조 개선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유효한 개선책이 나오지 않으면 채권단공동관리절차(워크아웃)까지 불사하겠단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3개월 만에 효성화학의 부채비율이 1000%포인트 이상 치솟으면서 효성그룹도 더 이상 손 놓고만 있을 수 없게 됐다.
이에 효성그룹은 효성화학 특수가스 지분 매각 카드를 급히 꺼내들었다. 그럼에도 딜의 주도권은 매수 측이 아닌, 효성그룹이 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지난 6일 치러진 예비입찰엔 IMM·글랜우드·어펄마·스틱 등 국내 주요 사모펀드(PEF)운용사들이 대거 제안서를 제출했다.
거래는 효성화학이 특수가스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하고, 투자자가 효성화학이 보유한 주식 일부(구주)와 신설회사가 발행하는 보통주(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구주와 신주를 합해 투자자가 보유할 수 있는 지분율은 최대 49%다. 회사는 구주와 신주의 비율은 3대 2로 결정한 후 투자자들에게 제안을 받고 있다. 효성화학 측은 구주(1주) 매각가격과 신주(1주)의 발행가액이 동일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이번 거래는 투자자들이 거래구조와 대상, 조건 등을 선제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회사는 투자 제안 요청서에 이미 경영권을 확보할 수 없는 소수지분(최대 49%)의 매각으로만 확정 지었고, 이사회 구성에서도 회사가 과반 이상을 지명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잠재 인수 후보자를 대상으론 ▲신설회사의 기업가치(Enterprise Value 및 Equity Value) ▲구주와 신주 투자금액 및 지분율 ▲추후 신설회사 당기순이익에서 어느 정도의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배당 받을 것인지 정도만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경영참여와 회사의 정보제공과 관련해선 투자자에게 '희망 사항'을 제안서를 통해 기재할 수 있도록 했다.
회사가 제시한 구조에 따르면 투자자와 회사는 기업공개(IPO) 전까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주식을 한 주도 처분할 수 없다. 회사는 거래 종결일 이후 5년 내 IPO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투자자들이 지분 매각을 추진할 시 효성은 우선매수권(Right of first refusal)을 갖는다. 반대로 효성이 지분을 매각을 시도할 경우, 투자자들은 동반매도권(Tag-along)을 갖게 된다.
상대적으로 투자금 회수 보장 장치는 미흡하다. 보장 수익률은 없고, 소수 지분 거래에 주로 쓰이던 장치인 IPO 무산시 투자자에게 동반매도청구권(Drag-along)을, 회사에 콜옵션(Call-option)을 부여하는 등의 조건도 담기지 않았다.
PEF업계 관계자는 이번 거래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자율적으로 구조를 제안하란 언급 없이 회사측에서 제시한 빈칸만 채워서 오란 식의 제안서는 상당히 당황스럽다"며 "사정이 굉장히 급박한 상황에서 알짜 사업 매각에 나서는 입장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M&A 과정에서 효성그룹의 '고(高)자세'는 전례가 있다. 2020년 추진된 효성캐피탈 매각 당시 효성그룹은 지주사 전환이 2년이 지나기 전까지 효성캐피탈 지분(97.5%) 전량을 외부에 매각해야 했다. 2019년 효성캐피탈 매각이 공식화 할 당시 효성은 주가순자산비율(PBR) 약 1배 수준에서 매각을 추진했는데 주관사 교체를 거듭하며 가격 폭을 PBR 1.3배까지 올렸고 PBR 0.7배 수준에서 검토하던 투자자들과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도저히 간극을 메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이던 거래는 결국 PBR 1배 수준을 인정한 ST리더스프라이빗에쿼티(ST리더스PE)를 원매자로 선정하며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번 특수가스 부문 매각에서 PEF운용사가 대거 참전한 것은 운용사들이 대형 M&A 거래의 기근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 맞물렸기 때문이란 평가다. 사정이 다소 어려워지긴 했지만 PEF운용사 입장에선 재계 30위권 대기업과 연을 맺을 수 있는 계기이자 재무구조 개선과 지배구조 개편이 시급한 효성그룹으로부터 수 많은 자본시장 거래의 낙수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아직은 거래 성사를 장담할 순 없다. 효성 측이 원하는 1조원의 수준의 특수가스 부문 몸값을 투자자들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효성그룹이 주도권을 쥐고 안전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은 거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면, 기관투자자(LP)들의 반응도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51%의 지분을 효성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이상 분할 신설하는 회사가 채무에 대한 연대책임을 져야한다는 점도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부분 중 하나다.
다른 PEF업계 관계자는 "생각보다 많은 운용사들이 지원했는데 결과에 큰 기대를 갖고 있진 않다"며 "효성그룹과 거래 조건에 대한 협의가 아직 많이 필요하고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에 최종 거래 성사여부도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