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결국 다음 국회로…인물 없어 통과는 불투명
삼성전자, 사외이사에 신제윤 前금융위원장 영입
대관조직 영향력도…'14년 발의 후 논의까지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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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1대 국회에서 사실상 폐기수순에 접어든 가운데, 다음 국회에서도 법안 통과 여부가 불투명할 전망이다. '삼성 저격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선 끝에 낙천하면서, 법안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인물이 마땅치않단 평가다.
법안 통과 여부에 따라 삼성그룹 전체 경영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이어 또 한 시름을 덜었단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삼성전자는 금융위원장을 지낸 신제윤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등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용진 의원은 서울 강북을 경선에서 정봉주 민주당 교육원수원장과의 경선 끝에 패했다. 대표적인 비명(비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박 의원은 현역의원 평가 하위 10%에 적용되는 경선 득표율 30% 감산의 벽을 넘치 못했다는 분석이다.
박 의원의 낙천으로 삼성그룹이 수혜를 입게 됐다는 분석이 금융권 일각에서 제기된다. 박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대표적인 삼성 저격수로 불리며 삼성생명법을 주도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법은 지난 2020년 6월 박용진, 이용우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으로, 보험회사의 계열사 채권, 주식 보유한도 산정 기준을 공정가액(시가)으로 변경하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현재 총자산 대비 3%로 제한하고 있는 보험사의 계열사 투자 자산을 취득 원가가 아닌 시가로 변경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삼성생명은 24조원 규모의 삼성전자 지분을 강제로 처분해야 한다. 현재 삼성생명은 8.51%의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현 시가 기준 37조원에 달한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는데,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할 경우 지배력이 크게 감소하면서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큰 틀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법을 주도했던 박 의원은 삼성그룹 입장에선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다.
삼성생명법은 발의 2년 만인 지난 2022년 처음으로 소관위원회인 정무위원회의 법안소위에 안건으로 상정됐다. 다만 그 후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지난해 6월 박 의원이 법제사법위원회로 상임위를 이동하며 사실상의 동력을 상실했고, 3월 임시국회가 열릴 가능성도 낮아 사실상 폐기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공은 다음 국회로 넘어갔지만, 통과는커녕 재발의 여부조차 불투명하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박 의원이 낙천하면서 다음 국회 입성이 사실상 불발됐기 때문이다. 함께 발의한 이용우 의원 역시 경기 고양정에서 김영환 전 경기도의원과의 경선 끝에 패배해 차기 국회 입성이 좌절됐다.
한 야당 관계자는 "삼성생명법은 같은 야당 내부에서도 반대가 많았던 법안이었는데, 박용진 의원이 홀로 이끌었다고 과언이 아니었다"며 "다음 국회에 입성할 인물 중 그정도로 뚝심있게 법안을 추진할 인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도 삼성생명법을 의식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사외이사진에 정통 금융관료가 합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행정고시 24회 출신인 신 전 위원장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장, 금융정책과장, 기획재정부 제1차관을 거쳐 2013년부터 2년간 금융위원장을 역임했다. 오는 20일 정기주총을 통해 정식 선임된다.
신 전 위원장은 지난 2014년 국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보험사의)주식 보유량 자체를 문제삼을 수 없다"며 "계열사 주식의 비중이 과도해 문제라면 공정거래법이나 금융관련법으로 따로 규제하고 있다"며 삼성생명법에 대해 사실상의 반대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삼성그룹 대관 조직의 영향력도 무시하기 힘들다. 삼성생명법 통과를 막기 위해 대관 조직이 물밑에서 움직였던 것은 이미 국회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2014년 관련 법안이 처음으로 발의됐지만, 본격적으로 논의되기까지 8년이 걸렸다는 것도 이 때문이란 설명이다.
한 정무위 관계자는 "당시 삼성생명법이 1소위에 상정된 후 첫 회의 전 삼성 대관 담당자들이 수 차례 의원실을 찾아 분위기를 물었다"며 "우리는 반대 입장이라 좀 덜했지만, 찬성하는 입장의 의원실에는 방문 빈도 등 그 정도가 더 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