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상 45영업일이지만…6개월 이상도 다반사
배경에는 거래소 인사 지연…업무 공백 불가피
정은보 이사장 금감원장 시절 임원 일괄 사표도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 절차가 깐깐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심사 일정도 늘어지며, 연초 증시 입성을 목표로 기업공개(IPO) 절차에 나섰던 일부 기업들은 심사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철회를 택하기도 했다.
지난해 '파두 사태' 이후 심사 기조가 보수적으로 변한 탓이 크지만, 일각에선 이와 별개로 정은보 이사장 취임 후 지연되고 있는 거래소의 임원 인사가 영향을 미쳤단 목소리가 나온다. 정 이사장은 지난달 15일 정식 취임했다. 첫 인사 발표는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이센스바이오, 옵토레인, 노르마, 코루파마, 피노바이오 등 다수의 발행사들이 한국거래소에 제출했던 상장예비심사 신청서를 철회했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7~8월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뒤 반 년이 넘는 시간동안 심사를 받아왔다.
현행 한국거래소의 상장 규정 상 상장예비심사 기간은 원칙적으로 45영업일이다. 다만 이는 법정 강제 사항이 아닌 업무 원칙이며, 제출서류 정정이나 보완이 필요할 경우 심사 결과 통지 연기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 IPO 업계에서는 거래소의 심사 지연 정도가 지나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거래소의 심사 일정이 지연되면서, 발행사뿐만 아니라 상장 주관을 맡은 증권사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업무 타임라인을 수립함에 있어 예측 불확실성이 커지면서다. 일각에선 일정이 지연되면서 연초 뜨거운 공모주 시장의 수혜를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중소형 증권사 IPO 담당자는 "예정대로라면 연초에 주관을 맡은 2~3개 발행사에 대한 상장이 이뤄져야 했지만, 거래소의 심사가 지연되면서 일정이 뒤로 밀렸다"며 "공모주에 대한 관심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심사 지연으로 수혜를 누리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심사 일정이 길어지고 있는 배경에는 지연되는 거래소의 임원 인사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평직원 인사와 별개로 업무 결정권자인 임원들이 부서 이동을 할 가능성이 있으면, 업무적으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14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을 제8대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정 이사장은 15일부터 정식으로 취임했지만,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첫 인사발령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반 평직원들의 인사는 1월 초중순 마무리됐다.
현재 정 이사장은 거래소 안팎으로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쇄신과 안정 사이에서 인사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거래소는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태 등 불공정거래와 관련해 시장 감시 역할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안착도 과제다.
정 이사장이 취임 초 인사 권한을 통해 조직을 장악하는 성향이라는 점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지난 2021년 금융감독원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임원들에게 일괄 사표를 받은 뒤 인사를 진행했던 일화는 지금까지도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정 이사장은 10일 취임 후 첫 출장길에 올라 오는 13일까지 해외 거래소와 투자기관 고위급 관계자를 만나 한국판 밸류업 프로그램 세일즈 행보에 나선다. 이에 따라 당초 3월 초중순으로 예상됐던 인사 발표 일정도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사장이 바뀌어도 경영지원본부장 등이 인사 밑그림을 그려두면 그에 따라 빠르게 인사 발표가 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정 이사장은 조직 장악력이 센 사람으로 유명해 인사가 지연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거래소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상장예비심사 등도 줄줄이 밀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