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늘리기로 했지만 지원 우선 순위는 없어
방산 외 SK·롯데 등도 선착순 신청 따라 지원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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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을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리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음에 따라 어떤 기업들에 수혜가 돌아갈지 관심이 모인다. 당초 방위산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자본확대 논의가 시작됐지만 대출 여력을 활용하는 데 우선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금 사정이 급한 기업들의 수출입은행 방문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9일 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을 확대하는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4년 법 개정 이후 10년만의 자본금 확대다. 정부는 실제 자본금 납입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한국항공우주(KAI)처럼 정부가 갖고 있는 주식을 출자하는 안이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NXC 지분 활용 가능성도 거론된다.
수출입은행은 한 기업집단에 자기 자본의 50%까지, 단일 기업에는 40%까지 신용공여(대출, 지급보증, 투자 등)를 할 수 있다. 신용공여 시 납입자본금과 이익잉여금, 보완자본을 포함한 자기자본이 기준이 되는데 납입자본금이 커지면 기업들에 지원할 수 잇는 여력도 늘게 된다.
수출입은행 자본금 확대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국내 방위산업 기업들의 수주 낭보가 이어진 영향이다. 방산 기업들은 2022년 폴란드 정부와 17조원 규모 1차 무기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규모를 더 키워 2차 계약을 맺으려 했지만 수출입은행의 금융 지원 한도에 막혀 차질을 빚었다. 이후 시중은행 등이 수출 지원에 나섰지만 생소한 업무라 협상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 LIG넥스원 등 방위산업체가 수출입은행 자본금 확대의 첫 수혜자가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K-9 자주포, 다연장로켓 천무, K2 전차 등의 추가 해외 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점쳐진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등 해양부문 방위산업체도 해외 수주 관련 금융 지원을 기대할 만하다.
방위산업체 외의 기업들에도 수출입은행 금융 지원 수혜가 돌아갈 수도 있다. 자본금 확대에 따라 늘어난 신용공여 여력을 방위산업체에 우선 지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에서도 방위산업에만 지원하다 무리수를 둘 수 있기 때문에 속도조절을 하라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이 외에 기업집단별 지원 순위나 규모가 따로 정해진 것도 아니다. 정부의 자본확충이 이뤄진 후 자금 지원을 요청해야 늘어난 여력의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먼저 준비해서 오는 곳이 기회를 잡는, 사실상 선착순이다.
SK그룹이나 롯데 등 자금 사정이 급하고 수출이나 해외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수출입은행의 문을 두드릴지 관심사다.
SK그룹은 여러 금융사의 계열한도가 상당 부분 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입은행에서는 SK온 해외 증설 자금, 일본 키옥시아 투자 자금 등을 빌렸었다. 수출입은행의 SK그룹 계열 한도는 한 대 40%에 육박했는데 지금은 일부 자금이 상환되며 살짝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계열사 재무 부담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SK온 투자금이 계속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로 손을 벌릴 가능성도 있다.
롯데그룹도 인도네시아 라인 프로젝트를 위해 대규모 자금을 수출입은행 등에서 빌렸다. 최근 시중은행 등의 도움으로 롯데건설발 유동성 부담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롯데케미칼의 실적 개선이 쉽지 않고, 신산업 등 추가 자금도 필요한 상황이라 자금 소요는 계속 발생할 수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수출입은행 자본금 확대는 방위산업 수주 때문에 추진됐지만 늘어난 한도의 용처나 우선 순위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며 "사실상 선착순으로 자금 급한 기업들이 먼저 준비해서 신청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