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왕좌 지킨 KB證…작년 NH證 추격으로 불안감은 여전
중위권 경쟁도 치열…신한證 치고 올라오며 SK證 하락세
주관 경쟁 심해져…눈도장 찍으려 을(乙) 자처하는 증권가
-
회사채 시장은 원래도 발행사 우위 시장이었으나 최근 증권사들이 주관 지위를 따내기 위해 제살 깎아먹기식 영업을 하고 있다. 금리를 깎고 싶은 기업들이 오히려 이런 경쟁을 부추기면서 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KB증권과 NH투자증권의 양강 구도는 올해 1분기에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다만 지난해 NH투자증권이 일반 회사채 주관에서 KB증권을 앞선 적 있기 때문에 순위 변동에 대한 긴장감이 관찰된다. IB 먹거리가 줄면서 각 증권사가 DCM 등 정통 커버리지 영역에 사활을 걸고 있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2024년 1분기 기준 KB증권의 전체 회사채 주관 규모는 6조5400억원으로 집계됐다. 5조원인 NH투자증권을 1조5000억원의 차이를 앞질렀다. 일반 회사채 주관으로 하면 KB증권과 NH투자증권의 차이는 7000억원 정도로 줄어든다. KB증권이 안심하기만은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신한투자증권 등이 매섭게 치고 올라오며 중위권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1분기 신한투자증권 전체 회사채 주관 규모는 3조4900억원으로 4위를 기록했다. 그 영향으로 한국투자증권과 3, 4위권을 유지하던 SK증권이 5위로 떨어졌다. 신한투자증권과 SK증권은 전체 주관 규모가 불과 2000억원 차이로 접전을 기록 중이다.
회사채 시장은 원래도 발행사 우위지만, 증권사들의 주관사 수임 경쟁이 격화되면서 너도나도 '을(乙)'을 자처하는 모습이다. 주관 업무를 수임하기 위해 캡티브(captive·발행을 주관하며 인수투자를 약속하는 등 영업을 내세우고 있단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올해는 시장이 너무 혼탁해졌다. 10~20년간 계속 (발행사와) 관계를 쌓아온 게 있는데 일부 증권사들이 계열사를 동원해 금리를 억지로 낮추면서까지 주관 수임을 하려고 한다"라며 "상품을 제값에 가져가지 못하는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달 진행된 LG화학 2년물 회사채 수요예측에서는 한국투자증권이 채권 트레이딩 부서와 리테일 부서를 동원해 금리를 끌어내렸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전체 입찰 금리 수준은 -15bp~+30bp였는데 한국투자증권이 대체로 금리 하단에 베팅해 금리는 낮추고 가격은 높였다는 지적이다.
앞선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에 호텔롯데, 롯데쇼핑 등이 회사채를 발행했을 때 일부 증권사에서 낮은 금리에 들어왔는데, 다음날 유통시장에선 더 높은 금리로 내다 팔았다"라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플레이어들은 발행사에 눈도장을 찍기 위해 역마진을 감수한다"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이 '슈퍼 을'을 자처하는 가운데 발행사는 오히려 이런 경쟁을 부채질하는 모습이 목격된다. 발행사 재무팀 입장에선 고금리 시기에 채권 발행 비용을 아낄 수 있는만큼 캡티브 영업을 오히려 장려(?)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논란이 됐던 한 발행사의 채권 발행 같은 경우 재무팀에서 굉장히 노골적으로 요구를 했다. 관계를 우호적으로 쌓고 싶다면 금리를 낮춰달라고 시사한 것인데 주관사 입장에서 이를 거절하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감독원까지 현황 파악에 나선 상황이다. 금감원은 최근 자료 제출 요구 시스템(CPC)을 통해서 일부 증권사의 회사채 수요예측 내역을 받았는데 캡티브 영업으로 인한 민원이 제기됐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업계에선 경쟁 증권사가 넣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캡티브영업이 어제오늘일은 아니다. 다만 지난해 NH투자증권이 GS건설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에서 일부 기관투자자들을 배제한 것처럼 투자자들의 이해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라며 "기관투자자들에 회사채 영업을 하는 증권사들이 이들의 이익을 소외한다는 게 모순적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