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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 부동산 개발 시장의 위기는 어떤 투자자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확산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發) 한국 부동산 시장의 위기설은 몇몇 건설사들의 도산과 워크아웃 추진 등으로 일부가 실현 됐고, 일부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채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때론 ‘위기’란 단어가 실체보다 부풀려져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한다. 어떤 투자자들은 위기가 닥치기 전 안전한 투자처에 미리 자산을 배분하는가 하면 어떤 투자자는 그 공포에 베팅한다.
최근 한국 부동산 시장엔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물론,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Apollo Global Management Inc),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 등 글로벌 최상위권 운용사이지만 한국 투자가 뜸했던 운용사들이 최근 들어 각종 PF거래에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
아폴로는 '한국초저온'을 포트폴리오로 보유한 EMP벨스타와 합작법인을 세웠고 조 단위 크레딧펀드를 보유하고 있다. 크레딧펀드의 특성상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 대출, 부동산 및 PF 투자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데 최근엔 수도권 물류센터 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PE부문을 사실상 철수시킨 PAG는 최근 서초구에 위치한 부동산PF 사업에 수백억원 대 자금 출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펀드를 보유한 KKR은 국내 오피스 또는 인프라성 M&A 거래에서 항상 잠재 후보로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계 자금이 모태인 거캐피탈(Gaw Capital)도 최근 한국 부동산 시장에 상당히 관심을 갖고 투자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을 아시아의 변방으로 취급해왔던 글로벌 운용사들이 한국 부동산 시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내 금융기관과 기관투자자들은 이미 잔뜩 움츠려 들었다. 손실이 확정된 해외 부동산 투자는 오래전 멈췄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롯데건설, 태영건설 등 위기의 건설사들이 하나둘 거론되면서 국내 PF 시장에 자금줄을 대왔던 금융기관들은 상당히 보수적인 기조로 돌아섰다. 직접투자는 물론이고 운용사를 통한 선별적인 투자도 아직은 위축돼 있다.
자연스레 국내 PF 사업장엔 돈이 돌지 않기 시작했다. 수도권 지역 몇몇 우량한 사업장을 제외하고 자금 경색이 심화했다. 금융당국은 은행을 통해 돈맥경화를 풀어보려는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그 한계는 분명히 있다.
돈 줄이 마른 PF사업자는 각종 안전장치를 추가하고, 금리를 높여서라도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땅이란 담보도 물론 제공한다.
국내 최대 규모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는 이미 금융당국의 사정권에 들어왔다. 국내 부동산 투자에 집중하는 운용사들은 실제로 펀드레이징 빙하기에 가깝다. 크레딧펀드를 표방하는 국내 운용사들이 몇몇 있지만 규모 면에서 외국계 운용사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크레딧펀드마저도 이제 국내에 갓 정착하기 시작한 터라 국내 기관들이 선뜻 자금을 내어주지 않는다.
외국계 운용사들은 이미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 펀드를 만들어 투자처만 물색하면 되는 상황. 사실상 잃을게 없는 투자에서 ‘확정’ 수익률 계산만 하면 되는 셈이다. PF사업의 수익성, 부동산 자산 가격이 떨어져도 큰 걱정은 없다. 역대 최고 수준의 원-달러 환율은 수익률을 방어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된다.
최근엔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PF 투자에 잔뜩 얼어있기 때문에 나름 우량한 PF 사업장을 가진 사업자들도 애초에 외국계를 찾아 나서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은 외국계 투자자들이 국내 PF시장에 주요한 주체로 자리 잡았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자산 가격이 아직 덜 떨어졌다고 판단해 아주 선별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PF시장의 위기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부동산 시장이 폭락기를 맞을 것으로 예단하긴 이르지만, 국내 금융기관과 기관투자자들은 이미 올 하반기부터 PF 채권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은 부실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지만 건전성을 위한 선제적인 작업이다. 3월 현재, 언제든 한국 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채비를 마친 글로벌 운용사들은 수도 없이 많다. 어느 순간 한국 부동산(PF) 시장에, 국내 기관들은 '팔자(Sell)', 외국인 투자자들은 '사자(buy)'의 공식이 굳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감돈다.
입력 2024.04.03 07:00
취재노트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4년 03월 3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