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저울질 중이지만 주가·성장성 당위성 입증 의문
글로벌 변방 한국 기업에 '산업적 접근'할 가능성 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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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 임종윤·임종훈 형제는 여러 글로벌 사모펀드(PEF)들과 투자 유치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확실한 경영권 지분을 확보해 분쟁의 불씨를 끄겠다는 것인데 이해관계자가 많아 경우의 수가 복잡하다. 무엇보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변방인 한국 기업에 글로벌 PE가 후한 값을 쳐줄 것인지가 미지수란 평가다.
4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 형제 측과 유수의 글로벌 PEF들은 한미사이언스 투자 관련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KKR이 가장 적극적이고 베인캐피탈, 칼라일그룹 등도 투자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는 1조원 규모 투자를 유치해 기업가치를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 투자 파트너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PEF가 어떤 구조로 투자하게 될지는 아직 유동적이지만 큰 틀은 형제 측과 우군의 지분율을 50% 이상 확보하는 것이다. 형제 편에 섰던 개인 최대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지분율 12.15%)의 지분은 물론 형제 측 지분도 일부 PEF가 사들일 여지가 있다. 경영권은 형제 쪽에서 맡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분 매각, OCI그룹과의 통합 등 논의들이 진행됐기에 모녀 측에도 거래 제안이 갈 가능성이 있다. 송영숙 회장과 임종훈 사내이사 모자가 한미사이언스 공동대표가 되며 갈등은 일단 봉합된 분위기다. 이 외에 공개매수도 PEF가 활용 가능한 카드로 꼽힌다.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자금 사정 등을 감안하면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PEF 쪽으로 경영권 지분이 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형제 측은 배우자, 자녀 포함 30% 가까운 지분을 갖고 있다. 결국 신동국 회장이나 다른 가족, 기타주주 등으로부터 지분 20% 이상을 더 사들여야 안정권에 든다. 지분 20% 시가만 해도 5000억원이 훌쩍 넘고, 웃돈까지 얹어주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한미사이언스의 현재 몸값이 낮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3년간 주가를 살펴보면 최고점 대비로는 절반에 미치지 못하지만 저점에 비해선 30%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초 주가 상승은 경영권 분쟁 영향이 컸고, 뚜렷한 미래 성장 모멘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글로벌 PEF가 웃돈을 주고 지분을 사서 추가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분쟁 과정에서 뚜렷한 성장 전략이 제시된 것도 아니다. 회사 측은 R&D 역량에 기반해 글로벌 수위권 헬스케어 기업이 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상속세 부담을 덜기 위해 이종 기업과 통합을 추진하는 순간 명분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 형제 측에선 450개의 화학약품을 만들어 본 경험을 토대로 100개 이상의 바이오의약품을 제조하겠다고 했는데 이 역시 공허한 비전이란 지적을 받았다.
한 글로벌 PEF 관계자는 “신약 개발 회사도 아닌 한미사이언스가 지금 주가 수준의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내부적으로는 투자하더라도 향후 이익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제가 글로벌 PEF를 유치하면서 제시할 수 있는 당근도 불투명하다. 갑자기 회사의 상황을 개선시킬 묘수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 역량이나 제품 파이프라인이 있었다면 형제든 모녀든 끌어다 활용하지 않았을리 없다. 일부 지분만 인수한 글로벌 PEF가 회수에 나설 때 주가가 부진하다면, 형제 측 지분까지 묶어서 파는 방식은 고려할 만하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지형에서 한국은 변방이다. 미국이 절대적인 지위를 갖고 있고, 그 다음이 유럽과 일본 정도다. 한국이 일부 복제약과 바이오시밀러로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그 효과보다는 ‘가성비’에 기인한 면이 크다. 쟁쟁한 제약·바이오 공룡들을 봐온 글로벌 PEF가 산업적 기대를 갖고 한미사이언스에 투자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자연히 그간 꾸려 둔 펀드 규모가 크고, 자금 소진 수요가 있고, 크레딧 등 기대수익률이 낮은 전략을 적극 펼 수 있는 극히 일부 글로벌 PEF만이 후보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아시아 투자용 대형 펀드를 갖고 있고 기업 투자에서 재미를 봤던 KKR이 유력 후보인 것도 당연해 보인다.
다른 글로벌 PEF 관계자는 “글로벌 PEF가 투자심의에서 제약산업 변방에 있는 한국 기업 투자 승인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기대 수익률이 낮더라도 일단 자금을 소진하는 것이 급하다면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