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롯데켐도 장고…중장기 선택지 좁아질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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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화학 사업 구조조정을 두고 정부와 민간 사이 온도차가 두드러진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일찌감치 조정 작업에 들어간 대기업들은 들쭉날쭉한 업황 탓에 장고가 한창이다. 큰 틀에선 중국·중동 내재화 전략과 겹치는 사업들을 줄여나가는 방향이 거론되지만 정부 차원 호응 없이는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목소리가 늘고 있다. 이제 막 협의체를 꾸리는 정부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시선이 모인다.
정부는 이달 초 '석화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협의체'를 출범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심으로 LG화학,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금호석유화학 등 민간 대기업과 산학연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국내 화학 산업이 처한 위기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범용 제품 위주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고부가 정밀화학·친환경 중심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
대기업 화학사들이 이미 작년부터 자체적으로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던 터라 민관이 공동 대응에 나서게 된 상황 자체에 대해선 바람직하단 평이 많다. 그러나 정부가 민간에 비해 너무 느긋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내 화학 사업이 처한 상황이 그리 넉넉한 게 아닌 탓이다.
투자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쿠웨이트석유공사(KPC)의 화학 자회사 PIC와의 화학 사업 합작법인(JV) 출범을 두고 논의가 한창인 것으로 파악된다. 당초 이르면 1분기 중 납사분해설비(NCC) 및 기초·범용소재 부문 물적분할 등 작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분할 범위나 지분 가격 등을 두고 줄다리기가 길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수합병(M&A) 시장 한 관계자는 "과거 SKC와 PIC의 JV 사례와 비슷한 구조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JV를 통한 소수지분 유동화 거래 특성상 양자 눈높이를 맞추는 과정이 길어질 수 있다"라며 "대상 사업 자체도 크고 JV 후 양측이 매수청구권(콜옵션)을 확보하는 구조라면 가치 평가부터 스페셜티 등 수익성 좋은 포트폴리오 포함 여부까지 협상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현재 알리, 테무 등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 세를 불리며 갑작스럽게 업황 전망이 틀어지는 것도 대기업들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처럼 중국 봉쇄 해제에도 업황이 바닥을 길 때라면 정리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었겠지만, 현재 회복 시점이 빨라질 것이란 기대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초저가 소비가 물동량 증가, 기초소재 공급과잉 해소로 이어질 경우 계산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협상이 길어질수록 불리한 조건만 남을 거란 우려도 여전하다. 쿠웨이트를 비롯한 중동 원유 생산국 역시 내재화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중동 등이 정제·분해 설비부터 다운스트림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해갈수록 국내 대기업들은 자산을 넘길 상대가 마땅치 않다.
연착륙을 하자면 LG화학이나 롯데케미칼 등 상위 대기업 화학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 안팎 조율에 나설 필요성이 높다는 얘기다.
연초 롯데케미칼 파키스탄(LCPL) 매각이 무산된 것도 해당 국가 측 협조 문제가 발목을 잡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외에도 SK·한화 등 대기업 그룹사의 화학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하면 크로스보더(국경간거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정부 지원이 필요한 영역으로 꼽힌다.
관련업계는 물론 시장에서도 총선 국면이 지나면 좀 더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관련 부처에서 일부 안이 오가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민간에 비하면 준비가 덜 된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많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일본 사례처럼 정부 주도 구조조정이 진행될 필요까진 없겠지만 그간 선거 때문에 관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라며 "이제 막 민관 협의체가 출범해 기업들 사정을 들어보고 파악하는 정도라면 늦고, 이른 시간 안에 사업 구조 전환 등 연착륙 방안이 나와줘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