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된 소송전…"소송 소식 놀랍지도 않아"
회수 여부 두고 선·후순위 대주끼리도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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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계의 '형·동생 영업'으로 쌓아온 관계가 서로를 향한 소송으로 흔들리고 있다. 대출을 주고받는 대주와 시행사는 물론 사업 진행 과정에 포함된 시공사, 신탁사 등 모든 기관이 휘말렸다.
PF 업계에 형·동생 영업은 만연했다. 대주의 경우 대표 주관사가 대출기관을 섭외할 때, 대출 참여 의향이 있는 대주끼리 서로 대출 조건을 확인하고 조율할 때 등 다양한 형태로 형·동생 영업이 힘을 발휘한다.
특히, 저축은행은 PF 컨소시엄을 꾸릴 때 이러한 영업 방식이 작용한다. 가령 500억원을 대출할 경우 각 저축은행이 몇십억원씩 모아 함께 대출하는 식이다. 저축은행은 일반적으로 100억원 미만의 자금으로 PF 대출을 취급하기 때문에 전체 79개 저축은행 중 일부가 모여 컨소시엄을 구성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PF사업장의 약 60%가 저축은행만으로 컨소시엄이 구성돼있다.
대주가 사업장에 대출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행사·시공사·신탁사는 PF 사업장이 타사 사업장 대비 조건이 좋지 않아도, 대주단과 관계가 좋다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관계를 쌓기 위해 접대, 사업장 선정 시 페이백 제공 등 다양한 방안이 활용됐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어느 지역의 어떤 사업장이라도 사업이 원활히 진행됐으며 대주는 목표 수익률을 맞출 수 있었다.
결국 PF 사업을 어디서 주도하는지, 해당 사업 담당자와 누가 긴밀한 관계인지에 따라 PF 진행 여부가 갈리기도 했던 셈이다.
관계 영업이 PF 업계에만 있는 건 아니다. 불법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관계 영업 자체를 비난하기도 어렵다. 점차 사라지고는 있으나 금융권을 비롯해 사회 전반적으로 활용하는 영업의 한 방식이다.
그러나 부동산 불황기에 문제가 다수 발생하자 호황기의 형·동생 관계가 더이상 이어지지 못하는 모양새다. PF 사업장이 멈추고 소송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건설사 혹은 건설사의 책임준공을 약속한 신탁사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일상'이 됐다.
코람코자산신탁은 부산 범천동 오피스텔 사업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오피스텔 사업에서 각각 대주단과의 대출금 반환 소송에서 패소했다. 원창동 물류센터 건설공사의 PF 대주단은 지난 2월 신한자산신탁·시행사·시공사에 지난 2월 약 575억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한 지식산업센터의 대주단은 책임준공 미이행을 이유로 KB부동산신탁을 상대로 한 소송 제기를 검토한 바 있다.
대주단은 시공사가 책임준공기한을 하루라도 지키지 못하면 시행사의 PF 채무를 인수하도록 압박하는 추세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작년 12월 경기도 안성 물류센터의 책임준공 기한을 준수하지 못해 995억원 상당의 채무를 인수했다. 이외에도 동양·금호건설·까뮤이앤씨·범양건영 등이 동일한 사유로 시행사 채무를 인수했다.
지난해부터 자금조달 비용 및 공사비 상승으로 책임준공기한이 경과한 사업장이 많아진 영향이다. 공기를 제때 못 맞추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시공사·신탁사가 대주단에 손실분을 물어줘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기한 경과 사업장은 주로 물류센터, 지식산업센터, 오피스텔, 생활형 숙박시설 등 비주택 사업장이다.
최근 이례적으로 대주끼리 소송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대주는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피차일반' 상황이라 서로 소송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업계에 따르면 부실 사업장에서 선순위 대주가 공매를 시도했으나, 후순위 대주가 소송을 통해 공매를 무산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계약서 상 선순위 대주의 공매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후순위 대주가 손실을 피하기 위해 계약서의 허점을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 한 임원은 "비즈니스 관계가 사적인 관계와 섞여 '형·동생 영업'이 되는 순간 서로 공정한 잣대를 세우기 어렵다"며 "다만, 조직 관계상 어쩔 수 없이 소송하는 경우도 있다. 일은 일이고, 관계는 관계니 소송을 거치면서도 관계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