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비트·SK렌터카 등 산은·SK 중심 자문 실적
한국 CS 이질적 문화·내부 경쟁 등 부담 요소도
소원해진 SK그룹과 관계가 가장 큰 변수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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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스스위스(CS)를 품은 UBS증권이 최근 국내 M&A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본질은 CS가 UBS에 흡수된 것이지만 유독 한국 투자은행(IB) 영역에선 굴러들어온 돌(CS)이 박힌 돌(UBS)을 밀어내는 모습이다.
다만 진행하는 M&A 상당수가 '사연 많은' 거래들이다. 수수료 박하기로 정평이 난 산업은행과 채권단이 엮인 거래(에코비트ㆍ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거나, CS 시절 탄탄했던 기업과의 네트워크가 기반이 된 거래(SK네트웍스의 SK렌터카 매각) 등이다.
이러니 한국 UBS 인력 풀이나 영업 방식 모두 사실상 옛 CS와 닮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CS 출신 인력들의 역량과 사업 방식을 UBS 정책 아래서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수년간 내홍과 통합 작업을 거치며 가장 중요한 사업 파트너인 SK그룹과 관계도 소원해진 터라 '지속가능한 영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작년 UBS와 CS가 통합된 후 세계 각지에서 중복 영역 정리 및 인력 조정 작업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작년 하반기 이후 김세원 전무(모건스탠리), 오신나 상무(도이치), 최혜령 상무(카카오), 양성호 이사(CJ그룹) 등이 UBS를 떠났다. 이 외에도 UBS 퇴직프로그램에 따라 퇴사나 이직을 준비하는 인력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국 UBS의 IB는 CS에서 넘어온 이경인 부의장(Vice Chair)과 심종민 전무 두 매니징디렉터(MD)가 담당하고 있다. 다른 부서는 UBS 출신이 힘을 쥐고 있지만 IB는 점령군이 실권을 쥐었다. 글로벌 UBS는 WM에 주력하지만 IB 영역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한국에선 이들의 자문 수행 실적을 높이 치고 후한 영입 패키지를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UBS는 CS를 품었지만 실상 다시 옛 CS로 돌아간 형국이다. 예전엔 이천기 전 부회장-이경인 대표 체제가 이경인 부의장-심종민 전무 체제가 된 정도가 달라진 점이다.
최근 UBS의 업무 실적도 CS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SK그룹'과 '산업은행'은 과거 CS의 M&A 자문 실적을 뒷받침하던 양 날개였다. 지금 진행하는 자문들도 SK렌터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 에코비트 등 SK-산업은행 관련 거래들이다. 효성화학 특수가스 투자유치도 자문하고 있는데, CS는 과거 효성캐피탈(M캐피탈) 매각 일을 잠시 맡기도 했다. 최근 삼성전자 등 블록딜 거래들은 UBS가 갖고 있던 파이프라인이다.
UBS가 CS의 정체성을 이어받아 활약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도 이런 성과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단 이경인 부의장 등이 과거의 성과를 인정받긴 했지만, UBS 글로벌 정책과 괴리가 언제든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UBS와 연을 맺고 있는 곳들은 결국은 ‘낮은 자문료’를 가장 먼저 선택 이유로 꼽기도 한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한국 CS는 고객들과 관계를 쌓은 후 자문으로 이어가는 영업 전략을 펴왔는데, 계약을 확실히 하고 자문에 들어가는 UBS가 어떻게 볼지 의문”이라며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은 자문 계약 당사자의 지위도 달라진 터라 거래가 끝난 후 자문료 정산 시 잡음이 불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UBS는 이경인 부의장과 심종민 전무가 서로 협조하고 경쟁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UBS가 IB에 크게 힘을 주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이 둘도 단순히 팀워크에 집중하기보다는 각자 '본인의 실적'을 더 챙겨야 사내에서 입지가 탄탄해진다. 따져보면 에코비트의 경우 이경인 부의장보다는 김양한 KKR 부사장과 ‘맥쿼리’ 연줄로 이어져 있는 심종민 전무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문제는 SK그룹의 관계가 이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CS 시절엔 SK그룹의 ‘사내 IB’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동일 선상에서 다른 IB와 경쟁해야 한다. SK그룹 수뇌부와 끈끈한 네트워크를 자랑하던 이천기 전 부회장의 영향력은 더 이상 없다.
작년 SK그룹과 인연이 완전히 갈라설 뻔한 위기도 있었다. CS 한국 임직원 일부 사이에서 불거진 내부 갈등이 알려지면서 이 사실을 접한 SK그룹 고위층에선 CS 관련 일감을 거둬들이거나, 다시 주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부회장들이 즐비한 시절의 SK그룹과 CS의 네트워크가 예전같지 않으니 UBS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UBS는 최근 2조원 규모 SK온 프리IPO 주관에서 고배를 마셨다. 자문 수행 실적만이라도 따오던 CS 때와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평가다. 아울러 제프리스 한국 사무소로 권토중래하는 이천기 전 부회장이 활동을 재개하면 UBS는 기존 CS의 네트워크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사실 SK렌터카 매각은 이미 수년 전부터 UBS(CS)가 매각 맨데이트를 갖고 있었다. 이 거래가 UBS의 마지막 SK그룹 일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SK그룹과 CS의 과거 관계가 지금은 다른 양상이며 평판 관리 차원에서 당분간 UBS는 SK그룹 일을 맡기 어려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