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도 촉각…금리추이에 따라 충당금 늘어날 수도
올 한 해 돈 벌 방안 흐릿…이자 비이자 기댈 곳 없어
배당규모 낮아질 가능성…자본비율 관리에 은행권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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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은행 중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부담이 가장 큰 KB국민은행은 배상금 1조원ㆍ과징금 1조원 합쳐 상반기에만 총 2조원의 수익이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다른 은행들도 예상치 못했던 충당금을 미리 쌓아놔야 한다는 점에서 사정은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영업도 만만치 않습니다. 오죽 팔 게 없으면 죄다 커버드콜 상장지수펀드(ETF) 판매에 나섰다가 또 금감원으로부터 조사를 받겠습니까." (한 은행 리테일 담당 임원)
올해 실적 관리를 놓고 은행권의 우려가 깊다. 당장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홍콩 ELS(주식연계증권) 여파에 따른 충당금 및 과징금 등의 여파로 순이익 감소가 전망된다.
더 큰 문제는 올 한해 은행권의 영업이익을 책임질 수익처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규제 및 경쟁 심화로 대출자산 증대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운데 상품 판매 위축으로 비이자이익 증대도 쉽지 않다. 이에 배당규모를 유지하기보단 보통주자본비율(CET1) 관리가 ‘발등의 불’이라는 평가다.
증권가에 따르면 올 1분기 주요 시중은행 순이익은 전년대비 최대 30% 가까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요 지주별로 국민은행은 약 28%, 신한은행은 12%가량 순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나은행은 14%, 우리은행도 11% 순이익 역성장이 예상된다.
홍콩ELS 자율배상의 시작으로 선제적인 충당금을 쌓은 데 따라 순이익이 감소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예상 손실규모가 가장 KB금융을 비롯해 은행권은 1분기에 홍콩ELS와 관련한 충당부채를 대거 적립할 계획이다. 충당부채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순이익은 줄어드는 구조다.
은행권, 순익 주는데 총영업이익 증대는 요원
문제는 이런 순이익 감소 여파가 2분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시중은행에 홍콩ELS 관련 검사의견서를 송부한 상태다. 5월 중순께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이 열릴 예정이다.
그간 금감원은 과징금 경감을 전제로 은행권 자율배상을 권고해왔는데, 제재심을 앞두고 이를 장담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만약 자율배상과 과징금이 개별로 부과된다면 시중은행으로선 또 한번의 실적 감소 여파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환율이나 금리 추이도 올해 전체 은행권 순이익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봐야한다. 최근 미국 경기 호조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며 원달러 환율이 상승했고, 이에 금리 인하 시기도 예상보다 더뎌질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환율 상승은 은행들의 FX(외환거래) 환산 손실로 이어지고, 금리 인하 시기 역시 그대로 은행권의 추가 충당금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떨어지면서 은행권의 충당금 규모 추산치가 늘어날 수 있다”라며 “하반기 금리 인하 기대감에 대출을 받았던 개인사업자들의 연체율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충당금 규모가 작년 은행권이 잡았던 수준을 웃돌 가능성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순이익 감소 요인은 산적한 반면, 은행권 총영업이익을 늘릴 방안은 요원하다는 평가다. 시중은행의 대표적 수익처는 이자이익과 비이자이익으로 나뉘는데, 은행간 경쟁 심화로 영업이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이자이익 사업 중 가계대출은 정부 규제로 길이 막히자 기업대출을 두고 시중은행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국내 우량 기업은 한정된 상태에서 기업대출 출혈경쟁이 심화되자 마진율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산업은행이나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까지 기업대출에 뛰어들면서 인수금융 등 시중은행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비이자이익에 기대기도 어렵다. 홍콩ELS로 고위험상품 판로가 막힌 데다 외환수수료 경쟁으로 환전 이익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투자자문이나 투자일임 등 자산관리 사업으로 다각화를 꾀하고 있지만 상품 판매 제한으로 다양한 포트폴리오 상품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ELS 사태 이후 '안정적 월 배당'을 내세워 커버드콜 ETF를 집중적으로 판매해왔는데, 판매잔액이 2조원을 넘어서며 또 다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은 최근 커버드콜 ETF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 판매 과정에서 원금손실 가능성이 충분히 고지됐는지에 대한 내용도 핵심 점검 사안 중 하나다.
시중은행 한 고위 임원은 "올 하반기부터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나오면서 비이자이익이 올라와줘야 하는데 수익 낼 방안이 요원하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배당은커녕 자본비율 맞추기도 허덕
핵심 자회사인 은행의 실적 부진은 금융지주 전체 실적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영향이 적지 않다. 당장 주요 금융지주들이 연초 기대한 수준만큼 배당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음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주요 금융지주들은 올해 자본비율 관리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자본비율 유지와 배당 증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평가다.
2분기 과징금 규모나 환율, 추가 충당금 등으로 순이익은 빠지고 위험가중자산(RWA)은 늘어나게 된다면 보통주자본비율(CET1)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 작년 말 기준 시중은행의 외화대출 규모는 약 120조원에 이른다. 외화대출은 위험가중자산으로 분류되는데, 이를 원화로 환산한다면 그만큼 해당 규모가 커지는 셈이다.
약 2조원대 규모 배상금과 수조원대 과징금 역시 RWA 및 자본비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CET1은 자본을 RWA로 나눠 계산하는데, 배상금 및 과징금이 자본에서는 빠지고 RWA에는 더해지게 되면 보통주자본비율이 최대 1% 가량 줄어들 수 있다는 추론이 나온다.
보통주자본비율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전년대비 배당을 공격적으로 늘리거나, 자사주 매입소각을 진행하는 의사결정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홍콩ELS 배상의 이슈는 일회성 요인으로 끝나지 않고 10년간 운영리스크로 금융지주 RWA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며 "여기에 환율 상승 여파로 외화 자산을 원화로 환산할 때 자산이 늘어나면서 은행의 건전성 지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나 저축은행 부실 가능성이 거론되는 점도 국내 은행권으로서는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그간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해온 정부 기조를 따져볼 때 당장 수천억원 규모의 공적 자금이 필요한 사태에 은행권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작년 상생금융이나 부동산PF 펀드 조성 등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산업에 대해 국내는 정치적인 의견이 반영이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다 보니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외부 요인에 따른 실적 감소가 반복적인 이슈로 비화될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