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매각·통폐합 등 검토된 플랜B까지 뜨고지는 상황
실현 가능성 불투명하고 정부 역할 기대도 어려운데
확실한 카드 없다는 반증…사업조정 고민 커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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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국내 최대 업스트림 석유화학사를 중심으로 여러 구조조정 시나리오가 오간다. 올 들어 중동 원유생산국을 통한 출구전략부터 해외 대형 프로젝트 매각, 정부 주도 산업 구조조정에 그룹사 간 빅딜까지 수많은 방안이 뜨고 지는 형국이다. 양사가 실제 무게를 두고 진행 중인 전략의 성패가 불투명하다 보니 '플랜B' 고민이 새나오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현재 LG화학은 외국계 투자은행(IB)과 국내 대형 법무법인을 자문사로 선정해 쿠웨이트국영석유공사(KPC)와 납사분해설비(NCC)를 포함한 범용·기초화학 사업 합작법인(JV) 논의를 진행 중이다. 롯데케미칼도 사업 합리화 계획이 한창이다. 비주력 해외 자회사 매각 및 인도네시아 LC타이탄에 공동 투자자를 유치하는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양사 행보는 민간 대기업 차원 사업 조정 작업에 가깝다. 이미 십수년 전부터 원료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국내 업스트림의 구조적 불황이 예고돼 왔다. 이에 2차전지·바이오 등으로의 다각화 및 스페셜티·친환경 제품 개발 등으로 대비책을 세워왔지만 NCC를 비롯한 범용 화학 사업 부진을 막아내기 힘들어졌다. 원료 수입이 필요 없는 중국·중동이 다운스트림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사업 조정 자체는 불가피한 선택지로 풀이된다.
해외 대형 프로젝트 통매각이나 양사 보유 NCC 통폐합 등 다른 방안들이 꾸준히 오르내리고 있다. 실제로 비공식적 채널에서 양사 실무진 검토를 거쳐 간 사안들로 파악된다. 시장 반응은 당연히 좋지 않다. 대체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설익은 시나리오들인 탓이다.
자문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NCC가 과거 일본처럼 과당경쟁 구도가 아닌데 핵심은 중국, 중동 빅 2의 수직계열화에 따라 글로벌 NCC 전반 경쟁력이 희석된다는 점이다. 외부 변수로 인해 좌초자산이 되는 구조"이라며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이 수평통합을 통해 경쟁자 수를 줄이고 대형화에 나선다 해도 과잉설비 문제를 해소할 방법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에틸렌 생산 능력 기준으로 중국과 중동 국가가 글로벌 2, 3위에 오르며 산업 성숙기에 접어든지는 십수년이 지났다. 국내 화학사가 기술력으로 격차를 유지하기 힘든데, 최대 수출처인 중국은 생산 능력 1위인 미국 추월을 앞두고 있다. 중국은 인건비·원료비 모두 국내 화학사보다 경쟁우위에 있다. 수직계열화까지 마치면 국내 NCC를 모두 통합해도 규모의 경제를 갖추기 힘든 시기가 닥치고 있다는 얘기다. 업스트림 업체 한 곳이 문을 닫고 청산하는 경우를 가정해도 나머지 업체가 수년간 숨통을 트는 정도에 그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실무적인 차원에서도 걸림돌이 적지 않다. 화학 업계 출신 한 연구원은 "LG화학이나 롯데케미칼이 NCC 보유 업스트림이라 해도 다운스트림까지 계통도에 따라 전방 시장이 다 다르다. 지역별 콤플렉스(CC) 내 밸류체인까지 따지면 더 복잡해진다"라며 "설비 규모뿐 아니라 제품별 스프레드나 수익성도 제각각이다. 그룹사 간 빅딜이 이뤄지려면 공평을 기하기 어렵고 어느 한쪽이 손해를 봐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헀다.
정부가 나서 교통정리에 나서는 것도 쉽지 않다. 과거 일본 사례에선 통산성 주도로 임시조치법을 제정해 인수합병(M&A) 및 생산설비 효율화·과잉설비 처리 등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러나 시장개입에 대한 주변국 항의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정부가 LG화학이나 롯데케미칼 등 민간 기업 이상의 고민을 거친 상황도 아니다. 정부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회의적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것 자체가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이 마주한 고민의 무게를 드러내는 상황으로 보인다.
실제로 4월 들어 국내 NCC 일부 품목 스프레드가 흑자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지정학 분쟁 해소나 중국 경기부양책이 정교해진 덕에 납사 가격이 정상화하고 공급과잉이 일시 해소된 덕이다. 달리 보자면 국내 화학사 의지와는 무관하게, 대외 변수에 따라 업황이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JV를 꾸려야 하는 LG화학이나 자회사를 팔고 공통 투자자를 모셔와야 하는 롯데케미칼 모두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가치를 산정하고 거래 구조를 고안하는 동안에도 업황이 들쭉날쭉하고 있다. 향후를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눈높이를 맞추기도 어려워진다.
M&A업계 한 관계자는 "PIC가 국내 업스트림 설비, 노하우에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완전한 인수를 바랄 정도는 아니다. LG화학도 일부 돈 되는 특화 제품군은 포기하기 힘들 것"이라며 "결국 LG화학이나 롯데케미칼 모두 업황이 들쭉날쭉한 때 가격 문제를 포함해 향후 주도권 등에서 생각이 많아지는 국면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양사를 포함해 대기업 화학사 전반이 사업 조정 이후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고민을 키우고 있다. 지난 10년 이상 준비한 신사업이나 대형 투자 프로젝트가 차례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내놓고 있다. 의사결정을 쉽게 내리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사업을 정리하거나 축소하는 게 성과일 수 없다 보니 자문사 측에서도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