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LFP 선호 커지고 딴마음 품는 고객사…계약 불안↑
LG·삼성 등 다각화 대처해도 성패·수익성 기대는 별개
하이니켈·파우치형 중심 후발 SK온 사업적 불안 가중
조달에 사업 불안까지 덤…우려 좀처럼 가라앉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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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터리 3사에 대한 시장의 회의적 시각이 수백조원 규모로 쌓아둔 수주까지 뻗치고 있다. 전방 완성차 고객사들이 전기차 대응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비껴가는 가운데 이들이 원하는 배터리 폼팩터(규격)도 중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탓이다.
LG에너지솔루션(LG엔솔)부터 삼성SDI 등 수익성을 갖춘 업체도 시장 지형 자체가 뒤집힐 경우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SK온에 대해선 당장 상반기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1분기 LG엔솔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수혜분을 제외하면 사실상 영업적자를 이어갔다. 고객사 판매가 부진하니 공장 가동률이 정상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공급 물량이 줄어든 만큼 AMPC 유입도 줄어든다. 지난해 메탈 가격 하락으로 인한 판가 변동 손실이 본격화했을 당시보다도 심각한 분위기가 전해진다.
작년 하반기 LG엔솔이 예고했던 대로 삼성SDI, SK온 등 국내 셀 3사 모두 상황이 다르지 않다. 증권가에선 삼성SDI 역시 이번 분기 매출과 수익성 모두 바닥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쟁사에 비해 보수적인 수주·증설에 나섰던 만큼 당장 투자비 부담이나 AMPC 유입에 대한 불확실성은 적은 편이다. 그러나 고객사가 전기차를 팔지 못하며 요구 물량을 줄이는 상황은 동일하다. SK온은 지난 연말 186억원까지 줄인 영업적자가 1분기 3315억원까지 불어나며 2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시장에선 3사 고성장 전망의 마지막 방어선인 수주까지 허수로 보기 시작했다. 지난 2년 판가, 마진, 보조금 수혜 등 성장성을 뒷받침하던 여러 가정들이 줄줄이 깨진 데다 전방 고객사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일단 배터리 3사가 수백조원의 발주를 맡긴 고객사로부터 계약 위반에 따른 배상을 받아내지 못하는 모양새다. 3사는 지난 수년 공급 계약에 따라 레버리지를 일으켜 증설에 대응해왔다. 그러나 현재 고객사 판매 부진으로 공장을 세워둬야 하는 실정이다. 통상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대비책까지 계약에 반영되지만 배터리 3사가 적절한 배상을 요구하기 힘든 분위기가 전해진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계약 물량마다 다르지만 과거 수주 경쟁이 치열하며 저가 입찰은 물론, 공급 일정 변동에 따른 배상 책임이 다소 두루뭉술하게 반영된 것으로 파악된다"라며 "고객사들이 향후 합작법인(JV) 파트너십 재검토, AMPC 공유 요청, 배터리 재고 처리부터 공급 일정 변동에 따른 손실까지 비우호적 입장을 보인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간 배터리 셀 업체가 ▲메탈 가격 급등에 따른 부담을 고객사 판가에 전가하며 실적 착시를 묵인해왔다는 점 ▲이 시기 중국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시장 점유율은 물론 전기차 경쟁 구도까지 뒤집었다는 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달리 보자면 전방 고객사들이 국내 3사가 강점을 지닌 삼원계·고성능 배터리에 회의적 입장을 점점 키워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 미국 정부의 중국 수출 규제 정책이 국내 3사의 저지선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까지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보다 중국산 배터리 규제가 덜한 유럽의 경우 LFP 배터리는 물론 중국산 저가 전기차가 시장을 집어삼키는 중"이라며 "1~2년 내 배터리 화재 안정성 규제까지 강화하고 나면 국내 3사의 하이니켈계 파우치형 배터리 입지가 심각하게 불안해질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 연말부터 LG엔솔과 삼성SDI가 원통형·각형 배터리에서 신규 고객사와 협력 논의를 늘려가고 LFP와 같은 저가형 제품으로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선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3~5년 쌓아 온 수주가 충분한 전기차 판매 경험 없이 이뤄졌다. 시장 반응이나 고객사 전략 변화에 유연한 포트폴리오를 갖추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역시 아직은 성패를 가리기 힘들고, 최종 수익성은 기존 전망치를 밑돌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다.
같은 이유로 추가 자본 확충을 포함한 조달 작업이 한창인 SK온에 대한 우려가 한층 더 커지고 있다. 후발주자인 만큼 원통형·각형과 같은 배터리 규격이나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기차 외 응용처 대응 역량이 가장 떨어지는 탓이다.
현재 SK온의 가장 듬직한 고객사는 현대차·기아로 꼽힌다. 당초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자리매김했던 포드는 북미 신공장에 충분한 일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주력 신차 생산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까지 거쳤다. 이 때문에 작년 SK온에 대출까지 지원한 현대차가 포드를 대신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현대차그룹 역시 내부적으로는 전기차 안전성 규제 강화를 앞두고 하이니켈계 파우치형 배터리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삼성SDI와 처음으로 각형에서 협력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관련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엔지니어들이 그간 출하·탑재된 배터리의 화재 사고 전력이 없다는 점에서 SK온에 대한 신뢰도나 선호가 높은 편이긴 하다. 그러나 하이니켈계 파우치형 배터리가 새 규제에 부적합할 가능성이 꽤 화두"라며 "당장 원통형·각형이나 LFP 등 다른 폼팩터 개발·양산 경험이 부족한 SK온 입장에서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뿐 아니라 진행 중인 조달이나 사업 조정 작업을 두고도 좀처럼 우려가 가라앉지 못하고 있다.
올해 SK온은 7조원 이상 투자비를 마련해야 하지만 하반기 손익분기점(BEP) 도달을 자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반기 중 시중은행 지원으로 일부 브릿지 자금을 마련한 것 외 현재 추가 대출·자본 확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작년 SK온이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로 조달한 전환우선주(CPS)를 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해 S&P로부터 신용 등급이 깎이기도 했다.
외국계 IB 한 관계자는 "그나마 원달러 환율이 치솟은 덕에 달러 기반 펀드를 갖춘 투자자들이 프리 IPO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고 있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올해 중 추가 자본 확충을 성사해도 그룹 차원에서 2차전지 소재 계열사 매각 등 포트폴리오 조정 작업까지 마무리되기 전까진 재무 불안을 잠재우기 어렵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