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민희진이 쏘아올린 공…속살 드러난 방시혁 '의장'의 하이브
입력 2024.05.07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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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소녀시대의 <gee>, f(x)의 <Pink Tape>, 엑소의 <으르렁>.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이 민희진이 참여한 앨범을 내면 언제나 화제였다. 그만큼 K팝 팬들에게 ‘민희진’은 ‘믿고 보는’ 프로듀셔였다. 그가 하이브에 합류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K팝 팬들은 민희진의 능력에 하이브의 자본력이 더해질 것이란 기대와 동시에 ‘민희진 없는 SM’에 대한 아쉬움이 공존했다. 

      이후 민희진은 걸그룹 뉴진스(New Jeans)로 능력을 증명했다. 비슷한 콘셉트의 아이돌들에 피로감을 느낄 때쯤, 멤버 전원이 긴 생머리를 날리며 앳된 얼굴로 등장한 뉴진스는 대중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후 데뷔 1년도 안된 이 신인 그룹은 온갖 음원차트를 휩쓸었다. 웬만한 인기 아이돌이 깨기 힘든 기록도 여럿 만들었다. 젊은 층 사이에선 ‘뉴진스 스타일’이 유행할 정도였다. 

      대성공인줄 알았던 하이브와 민희진의 만남이 파국으로 향하고 있다. 시작은 하이브가 산하 레이블인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경영권 탈취를 시도했다며 감사에 착수하면서다. 하이브는 연일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며 민 대표를 ‘회사를 찬탈하려는 배신자’로 만들었다. 하이브는 민 대표를 향한 ‘주술 경영’ 의혹까지 주장까지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민 대표가 지난달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연 뒤로 분쟁은 새 국면에 들어갔다. ‘준비된’ 말만 전달하는 통상의 기자회견과 달리 민 대표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거침없는 욕설과 적나라한(?) SNS 대화 내용을 폭로하면서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어쨌든 민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됐다. 

      하이브와 민 대표의 분쟁은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며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민희진 대표와 하이브 측의 구체적인 갈등의 씨앗이 된 주주간계약 내용, 하이브가 민 대표의 배임을 증명하면 고작 30억 원에 민 대표의 어도어 지분을 뺏어올 수 있다는 사실 등이 알려졌다. 

      양측의 반박이 이어지고 있고 여전히 대중의 시선도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하이브가 이번에 ‘민희진이 쏘아 올린 공’ 후유증을 한동안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즐거움’을 팔아야하는 엔터사가 ‘내부 갈등’에 곪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스스로 키운 내분 사태로 하이브의 시가총액은 열흘 사이에 1조 원이 증발했다. 하이브가 민 대표를 ‘배임죄’로 지목하고 있지만, 하이브 주주 게시판에는 “내부관리 미흡으로 시총 1조 원을 날렸는데 배임은 방시혁과 하이브 경영진이 한 것 아니냐”는 주주들의 토로가 이어진다. 

      하이브가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멀티레이블’도 실효성에 큰 의문을 남겼다. 하이브는 각 레이블의 독립성이 확실히 보장됐다고 해왔지만, 이번 사태로 박지원 대표가 직접 나서서 “뉴진스 홍보를 하지 마라”는 식의 지시를 한 점이 드러났다. 레이블 간의 성과 경쟁뿐 아니라 결국에는 방시혁 의장 중심 ‘톱다운’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희진이 대표로 있는 어도어는 하이브가 80%이라는 압도적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다. 그런데 이런 회사에서조차 잡음이 빚어졌다는 사실은 하이브의 레이블 경영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을 나타낸다. 

      CJ ENM과 하이브 측이 지분 약 50%씩 소유하며 공동 운영한 레이블 빌리프랩도 의사결정에 있어서 혼선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결국 CJ ENM이 지분 전량을 하이브에 넘겼다. 당시에도 경영권은 CJ ENM이 있지만 빌리프랩의 소속 아이돌 엔하이픈의 육성과 프로듀싱은 하이브 측의 방시혁 의장이 맡으면서 의사 결정에서 상당한 비효율이 발생한 점이 주된 배경이었다고 알려진 바다. 

      1조 원을 들여 인수한 미국의 이타카 홀딩스 레이블도 인수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시장에서 리스크 요인으로 언급되어 왔다. 거침없는 M&A(인수합병)로 해외 리스크 관리가 잘 안 된다는 의견이 하이브 이사회 내에서도 나온다고 전해진다. 유명 팝스타가 소속된 회사로 유명한 이타카는 하이브의 인수 이후 다수 아티스트가 이탈했다. 

      민 대표가 ‘일개 월급쟁이가 아닌 연봉 5억, 인센티브 20억 원’ 임원이란 점을 들어 “공감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민 대표의 연봉이나 지분 가치가 얼마인지를 떠나서, 2시간 동안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사람들은 민 대표가 ‘거짓말’을 했다고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체제에 대한 질문에 “방시혁 의장이 손을 떼야한다”라고 언급했다. 민 대표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방시혁은 의장이지 않나. 두루 봐야 하는데 의장이 주도를 하면 알아서 기는 사람이 생긴다. 군대 축구 같이 골을 자꾸 의장한테 몰아준다. 그냥 인간 본성의 문제다.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최고 결정권자가 위에 떠 있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K팝 왕국’ 하이브가 초유의 위기에 봉착하고, 잘나가던 아이돌 뉴진스의 미래에 제동이 걸리고, 느닷없이 BTS(방탄소년단)·르세라핌·아일릿 등 하이브 소속 아이돌까지 논란에 소환되면서 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모든 문제의 시작이 이 지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