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부족한 증권사…빈 자리 채우는 외국계
서둘러 출자 나서는 국내 연기금·공제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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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부동산 대출 시장에 대한 운용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하며 에쿼티(지분) 투자에 부담을 느끼는 운용사들은 대출 시장에서 기회를 엿보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외국계 운용사들도 자금력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덩달아 연기금과 공제회를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예년보다 출자 시기를 앞당기며 부동산 대출 펀드 위탁운용사 선정에 나서고 있다. 수요가 몰리는 선순위 위주의 시장 파이는 한정적인 반면, 외국계 운용사 등 경쟁자는 늘어나면서 투자처를 발빠르게 확보하려는 행보란 분석이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큰손' 기관투자가인 공제회들은 부동산 대출 상품에 투자하기 위해 출자 계획을 공고하거나, 개별 프로젝트 투자건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2월 건설근로자공제회와 노란우산공제는 나란히 국내 부동산 대출펀드 출자 계획을 공고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는 지난달 운용사 선정을 마무리했고, 노란우산공제도 이달 초 운용사를 최종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사학연금, 행정공제회, 군인공제회 등 주요 기관들이 올해 주요 투자처로 사모대출펀드(Private Debt Fund)를 지목하며 부동산 대출에 주목하고 있다. 블라인드 펀드 형태가 아니더라도, 개별 프로젝트 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아직 비딩(bidding) 형태의 콘테스트 계획은 없지만, 현재 시장에 은행에서 받쳐주지 못하는 부동산 대출 투자 건들이 많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관투자가들이 이처럼 투자를 서두르는 데는 외국계 운용사들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국내 부동산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외국계 운용사들은 최근 본격적으로 지갑을 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외국계 운용사는 낮은 공실률을 토대로 국내 상업용 부동산 매매에 관심을 보였다. 다만 실거래까지 이루어진 사례는 드물었다. 가격 조정이 미미해 내부수익률(IRR)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최근 에쿼티보다 실물·PF 대출 투자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부동산 PF '옥석 가리기'에 들어간 당국의 기조에 따라 롤오버(만기 연장)를 하지 않으려는 대주단이 늘어나면서,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시행사 등에 대출을 집행하는 것이다. 이는 메리츠 등 국내 증권사들의 주 먹거리였으나, 최근 증권사들도 자금난에 허덕이면서 그 빈자리를 외국계 운용사가 채웠단 설명이다.
다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선순위 위주로만 투자 수요가 몰리고 있어 시장 파이 자체는 크지 않아, 좋은 투자 건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단 분석이다. 앞서 부동산 대출 운용사 선정을 공고한 공제회들 역시 세부조건으로 LTV 65~75% 이하의 선순위로만 구성된 대출이란 단서를 달았다.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현재 금융사들은 자금 여력이 없거나 RWA 관리 등으로 출자 규모가 제한된 상황이라 그나마 여유가 되는 곳이 연기금, 공제회"라며 "발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외국계 운용사들이 좋은 투자 건을 다 채가는 상황이라 서둘러 출자에 나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