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比 출자비율은 2배↓·결성금액은 2배↑
까다로운 요건에…세컨더리펀드 노렸단 평
장외매각·IPO 쉽지 않아…인기 지속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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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큰손 기관투자가(LP) 공제회가 한동안 중단했던 벤처캐피탈(VC) 출자에 시동을 걸고 있다. 다만 전체적인 출자비율은 줄이고, 펀드 결성금액은 늘리면서 요건은 더 까다로워졌다. 이에 대형 VC와 중·소형 VC 간의 격차가 더 커질거란 우려도 나온다.
공제회가 VC에 대한 출자를 재개한 데는 세컨더리펀드를 겨냥했단 평가다. VC 호황기였던 2020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펀드들이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만기에 도래하는데, 엑시트(회수) 전략이 마땅치 않아 세컨더리펀드가 담을 수 있는 매물이 많다는 설명이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건설근로자공제회는 현재 국내 벤처펀드 위탁운용사 선정을 진행하고 있다. 운용사당 100억원 이내로 총 2곳을 선정한다. 펀드당 최소 결성금액은 1000억원이며, 5월 하순 경 최종 선정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행정공제회, 군인공제회 등 복수의 공제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VC에 대한 출자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이번 출자는 지난 2021년 이후 약 3년 만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 뿐만 아니라 다른 공제회들 역시 최근 2~3년간 지갑을 사실상 닫으면서, VC 혹한기가 이어졌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가 장기화함에 따라 기초체력이 약한 스타트업의 부실이 늘어나면서, LP 입장에서도 VC에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부담이었다.
그랬던 공제회들이 최근 다시 지갑을 열기 시작한 데는 세컨더리펀드가 있다는 평가다. 세컨더리펀드는 VC가 기존에 투자했던 포트폴리오 회사의 주식을 다시 인수하는 펀드다. 회사의 구주뿐만 아니라 펀드에 출자한 투자자(LP)의 지분을 사오기도 한다.
회수 방안이 마땅치 않은 펀드의 입장에선 포트폴리오 기업의 지분을 매각해 엑시트할 수 있어 좋고, 세컨더리펀드 입장에선 투자 기업의 지분을 할인가에 매입할 수 있어 위험부담이 적을 뿐만 아니라 만기 기간도 짧아 단기간에 높은 이익률을 기록할 수 있단 평가다.
이에 공제회들은 VC 출자를 재개하면서도, 지원 허들을 크게 높이는 추세다. 실제로 건설근로자공제회는 이번 출자에서 최소 펀드 결성금액을 1000억원으로 정했는데, 이는 3년 전과 비교해 2배 늘어난 금액이다. 출자금액 100억원을 고려하면 출자비율은 10%인데, 이 역시 3년 전 20% 대비 2배 줄어든 수치다.
출자비율과 결성금액을 고려하면 사실상 클로징을 앞둔 펀드에 투자하겠단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펀드레이징 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VC가 단기간에 900억원을 투자받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면 이번 출자에 지원할 수 있는 하우스는 일부 대형 하우스에 한정됐단 평가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건설근로자공제회의 벤처펀드 지원 요건을 보면, 중·소형 VC는 사실상 지원할 수 없다고 봐야한다"며 "별도로 운용방식에 세컨더리펀드를 명시하진 않았지만, 최근 대형 VC들이 운용하는 펀드가 대부분 세컨더리란 점에서 세컨더리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타 공제회들도 비슷한 구조를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컨더리 시장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국내 VC들의 회수 방식은 그동안 장외 매각과 기업공개(IPO)로 한정적이었는데, 두 가지 방법 모두 용이하지 않은 대·내외적 환경 탓이다. 다만 세컨더리펀드 운용 업력을 보유한 운용사들이 적어, VC 사이의 빈부격차가 커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2022년 하반기부터 금리가 상승하면서 IPO를 통한 회수 실적이 급감했다"며 "올해 만기를 앞둔 펀드가 많아 세컨더리 시장을 유의깊게 보고 있는데, 세컨더리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들은 주로 대형 하우스 위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