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주주 거래 미리 알려 '소비자 보호' 취지
다만 주가 하락에 재산권 침해 소지 가능성도
제도 시행 전 매각 서두르는 움직임 이어질 듯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 도입’을 국정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상장사 내부자(임원 및 주요주주)의 거래로 주가가 급락하고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2022년 9월 도입 방안이 발표됐고, 작년 12월말 해당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지난 1월23일 공포돼 6개월 뒤(7월24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상장사 임원 또는 주요주주가 특정증권 등의 매매, 그밖의 거래를 하려는 때에는 거래 목적과 가격, 수량, 기간 등을 증권선물위원회와 거래소에 각각 보고해야 한다. 상장사 주요 주주 입장에선 불과 몇 달 사이에 ‘사전 공시’ 의무가 새로 생기는 셈이다.
주요 주주들의 지분 매각이 상장사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단순한 유동성 확보 목적이라도 시장은 대부분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다. 미리 소문이 나면 주가가 하락해 손에 쥘 돈이 줄거나 거래가 무산되기도 한다. 이에 국내외 증권사들은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등 거래의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사모펀드(PEF)가 가장 발빠르게 움직였다. 연초 칼라일그룹과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가 각각 KB금융과 신한지주 지분을 블록딜로 처분했다. 금융지주 주식이 저PBR 해소 정책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사전공시제도가 시행될 경우 회수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한 면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후 구체화한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 PEF의 지분 매각은 사전공시제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상속, 공개매수, 주식배당 등으로 보유하게 된 주식을 파는 경우에도 제도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보다 주목받는 것은 상장사의 대주주와 오너 일가의 행보다. 해외에선 후속절차 등 번거로움을 면제해주겠다는 목적에서 사전공시제도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공시하지 않으면 거래도 못한다는 규제 성격이 강하다. 상장 기업의 정보와 영향력이 집중돼 있는 대주주와 오너 일가가 규제의 주요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선 이런 제약이 탐탁지 않다. M&A 때 소액주주 지분도 함께 사도록 하는 제도는 수긍할 만하지만, 매각 계획을 사전에 알리도록 하는 것은 기업이나 주주의 재산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과도한 간섭이란 것이다. 내부 정보로 주가를 끌어올린 후 개인투자자에 팔아 차익을 거두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지나친 제약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행 과정에서 절차적 혼선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대기업 계열사나 오너 일가는 새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지분을 처분하는 방안을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연초 금융지주 블록딜 거래에 집중했던 국내외 증권사들도 이런 일감을 따거나 수행하기 위해 분주한 분위기다. 최근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장이 SK네트웍스와 SK㈜ 보유 지분 대부분을 매각했고, 이순형 세아그룹 회장 등은 세아홀딩스 지분 9.3%를 블록딜로 처분하기도 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보유 지분을 팔려면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야 할 때도 있는데, 미리 계획을 공시했다가 매각 시기에 이사회의 승인을 얻지 못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며 "제약이 크기 때문에 제도 시행 전에 주식을 처분하려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거래들은 상반기 중에 집중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7월 제도 시행 직전에 몰려 매각을 추진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상반기에 여유를 갖고 매각하는 편이 나은데 그 중에서도 1분기 분기보고서가 제출된 후 몇 주 안이 가장 부담이 적은 시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12월 결산법인은 이달 16일까지 1분기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분기보고서가 나온 후 2~3주까지가 최신 정보가 공개됐으면서도 주요 주주의 미공개 정보 활용 시비가 가장 적은 때"라며 "이 시기에 주요 주주들의 블록딜 거래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