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생태계 적합할까…중량급 인사에도 갈리는 평가
DS 넘어 사업지원 TF도 인사 바람…미전실 출신들 귀환
과거 주역들 속속 복귀…사업 외 지배구조 변화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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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비정기 인사가 잦아진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인사철이 아닌데 수장 교체를 단행했다. 도화선은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보이지만 양상은 크게 두 갈래다. 새로 반도체 사업을 이끌게 된 전영현 부회장과 함께 미래전략실 출신 인사들이 속속 삼성전자로 복귀 중이다. 미래 사업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의 주역들이 등판하고 있다.
21일 삼성전자는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을 새 DS부문장으로 위촉했다. 기존 경계현 사장이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옮겨갔으니 사실상 양자가 자리를 뒤바꾼 셈이다. 안팎에선 작년부터 추진해 온 엔비디아향 HBM 공급 문제가 주된 배경으로 거론된다. 엔비디아향 HBM 공급은 현재 DS부문 부활의 핵심 지표로 통한다.
작년 이맘때와 판박이란 평이 나온다. 1년 전 삼성전자는 DS부문 임원 30여명을 한꺼번에 교체했다. 챗 GPT와 같은 생성 인공지능(AI) 서비스가 반도체 생태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막 드러나던 시기다.
당시 엔비디아가 전망치의 수배에 달하는 실적으로 시장에 충격을 안기자 ▲대만 TSMC 첨단패키징 공정과 ▲SK하이닉스 HBM3의 삼각편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장에선 이때부터 삼성전자의 불안감이 본격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 부회장이 반도체로 복귀한 것이나 얼마 전 시작된 임원들의 주 6일 출근 등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계속되는 불안감이 인사로 드러난다는 분석이 많다.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가 초격차를 유지하던 시절을 상징하는 인사로 꼽힌다.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는 때 사업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과감한 인사를 단행했다는 평이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 요구대로 HBM을 납품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자 꽤 과감하게 수장을 교체한 것. 사실상 경 사장에 대한 경질로 받아들여진다"라며 "경 사장은 삼성전기 시절부터 사내 소통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내부적으론 HBM 등 미래 핵심 먹거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중량급 인사가 필요하다 내다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전 부회장이 뒤바뀐 반도체 생태계에 적합할지에 대해선 평가를 유보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업계에서 HBM은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갑을(甲乙)'이 뒤바뀐 변곡점으로 통한다. 삼성전자는 수십년 동안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사실상 범용 메모리 반도체의 표준을 이끌어 왔다. 경쟁사는 물론 고객사도 삼성전자 행보에서 자유롭기 어렵던 시기였다. HBM 이후는 고객사 주문대로 칩을 찍어내는 시대다. 시장은 과거 주역이던 전 부회장이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전 부회장이 온 지 하루 만에 경 사장이 시작한 외부 고객사와의 협력 프로젝트 등에서부터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라며 "DS부문에 힘이 실리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경쟁사가 고객사가 협력한 방식을 삼성전자가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 받아들여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인사 교체 바람은 DS부문을 넘어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에서도 관측된다.
전 부회장이 새 DS부문장에 위촉된 날 김용관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장 겸 삼성메디슨 부사장도 사업지원TF로 전환 배치됐다. 김 부사장은 해체된 미전실 전략1팀 출신이다. 전략 1팀은 과거 미전실에서 그룹의 신사업 발굴 및 인수합병(M&A), 사업 구조조정 등 핵심 업무를 맡던 요충지로 꼽힌다. 김 부사장은 지난 1월 삼성물산의 불법합병·회계부정 1심에서 이재용 회장과 함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올 들어 안중현 전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이 삼성전자 경영지원실로 복귀한 것과 연관 지어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안 사장은 소니와의 합작사 설립을 시작으로 오랜 기간 M&A 실무를 담당했던 키맨으로 꼽힌다. 시장에선 한화·롯데그룹과의 빅딜과 하만 인수가 안 사장의 주요 성과로 꼽힌다.
자연히 반도체와 같은 사업 문제 외 지배구조 측면 변화 가능성에도 시선이 쏠린다. 올 들어 기관투자가들은 삼성전자의 HBM 성과는 물론 M&A 전략에 대해서도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결국 투자가들이 삼성전자의 새로운 성과에 목이 말라 있다는 얘기다. 그간 정중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 주역들의 복귀전이 이어질지 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TF 내에서도 발표 당일 김 부사장 복귀를 파악한 것으로 안다. 이재용 회장 의중이 반영된 인사로 전해지는데, 내부적으로도 새 인재풀이 많이 부족한 상황"라며 "올해 60세인 만큼 향후 승진 가능성, 이동 배경에도 관심이 높다. 안 사장에 이어 핀셋 인사가 이어지고 있어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에도 시선이 모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