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인수금융 기회 늘지만 평가는 제각각
가치 따라 현금창출력 대비 차입금 배수 차이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사모펀드(PEF)가 가장 관심을 갖는 투자처는 제약과 바이오, 의료기기 등 헬스케어 분야다. 그간 집중했던 전통 제조업들의 현금창출력이 약화하자 성장 가능성이 확실한 영역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한 기업을 두고 여러 기업이 물밑에서 경쟁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이런 사업들은 큰 틀에선 건강과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이익률과 성장 전망, 사업 형태 등에서 차이가 난다. PEF에 돈을 빌려주는 금융사들의 시각에서도 이런 차별성이 드러난다.
금융사는 인수금융을 주선할 때 금리 못지 않게 상환 가능성을 가장 중시한다. 투자 자산의 담보가치나 상환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재무약정(Covenant)을 맺는데, 상각전영업이익 대비 순차입금(Net Debt/EBITDA)도 중요 지표 중 하나다.
투자 기업의 현금 흐름으로 빚을 얼마나 수월하게 갚을 수 있느냐를 보는 것인데, 배수가 높을수록 차주에 유리하고 금융사의 부담이 커진다. 그만큼 금융사가 회사를 높이 평가한다고 볼 수도 있다. 차주는 현금창출력을 유지하고 차입금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올해 들어 베인캐피탈은 클래시스 인수금융 자본재구조화(리캡)에 나섰다. 기존 인수금융은 4000억원가량인데, 이번엔 출자자(LP) 배당을 위해 차입 규모를 7000억원대로 늘렸다. 클래시스 주가 상승에 따른 것이다. 2022년 인수 후 2만원을 밑돌기도 했던 주가는 최근 5만원을 넘나들고 있다.
이번 리캡에서 상각전영업이익 대비 순차입금 배수는 9.5배 수준으로 정해졌다. 제조업의 경우 4~5배 수준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사들이 후한 가치를 인정한 셈이다. 클래시스는 일회적으로 의료기기를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꾸준히 소모품 교체 수요도 발생하는 사업 구조가 강점으로 꼽힌다. 회사의 연결기준 EBITDA는 2021년 542억원에서 작년 939억원으로 늘었다.
MBK파트너스는 의약품 도매 1위 지오영을 인수하며 대금 40%가량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할 예정이다. 상각전영업이익 대비 순차입금 배수는 7~8배 수준으로 거론되는데 시장에선 예상보다 높다는 평가도 있다. MBK파트너스가 네트워크 기반 사업에 강점이 있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지만 회사의 수익률은 아주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주관사도 막판까지 대출 조건을 두고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앤컴퍼니는 작년 피부미용 의료기기사 루트로닉을 인수하고 올해 미국 의료기기사 사이노슈어를 볼트온(Bolt on)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4500억원 규모 인수금융을 조달했는데 상각전영업이익 대비 순차입금 배수는 4~5배 수준으로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MBK파트너스는 작년 메디트를 인수하며 인수금융 대주단과 재무약정(상각전영업이익 대비 순차입금 6.5배 이하 유지)을 맺기도 했다.
최근 맥쿼리자산운용은 IMM PE로부터 1위 의약품 위탁생산개발(CDM) 제뉴원사이언스 인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중은행 등이 인수금융 제공 논의를 진행 중인 가운데 조만간 구체적인 조건이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미용기기 업체 제이시스메디칼도 PEF들의 투자 관심이 많은 잠재 투자처로 꼽힌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PEF가 투자한 포트폴리오 기업의 성장 전망이 밝거나 이익창출력이 좋아야 더 많은 돈을 빌려주더라도 부담이 덜하다”라며 “기업가치 대비 높은 차입 배수를 원하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